[배트맨 비긴즈] : 우아하고 멋지게 귀환하다. [집히는대로 영화담

남봐완님 : 그럼...배트맨은 초능력 같은건 없는거에요?
나 : 네^^ 그냥 다 자기 힘으로 무기 쓰고...
남봐완님 : 아...
나 : 뒤게 부자라서...^^;

참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새로운 배트맨 시리즈인 [배트맨 비긴즈]는 회색 도시 고담의 수호자 배트맨의 탄생을 정말이지 정색하고 극적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얼마나 정색을 했냐면 여기에는 프린스나 U2, 스매싱 펌킨스의 사운드트랙도 없으며, 대니 엘프먼의 소란스럽고도 기이한 매력이 담긴 스코어 음악도 없습니다. 한스 짐머의 웅장한 영웅 서곡만이 영화 전반을 채우며 이 탄생담이 진짜인양 시치미를 떼고 2시간 이상 진행됩니다.

그래서 조금 서운하실 부분이 많으실 겁니다. 조엘 슈마허와 워너의 덜떨어진 합작품들이야 겨우 잊혀졌지만, 팀 버튼이 창조한 포스트모던 느와르 도시 고담과 각각의 사연을 안고 기괴한 화장을 한 악당들이 그리울지도 모를 일입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고담은 배트맨 영웅전기를 위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그냥 미국 헌법이 지배하는 일반 도시의 풍경과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그나마 제일 별나 보이는 곳이 웨인즈 빌딩입니다!)

그 진중함과 정색함은 영화 시작부터 드러납니다. 수만 마리의 박쥐가 파닥 거리며 일체의 타이틀과 스텝롤도 없이 시작하는 영화는 배트맨의 첫 무용담이 끝나서야 [배트맨 비긴즈]라는 자막을 보여주며 이제서야 워너의 야심찬 배트맨 부활 프로젝트의 시작을 선언합니다. 앞서 보여준 2시간 20여분의 내용은 이제 배트맨이 고담시의 수호자로 첫 발돋음 하였다는 긴 도입부인 셈입니다.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와 서술 방식은 웬일인지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을 닮아 있습니다. 긴 도입부와 영웅 탄생을 예고하는 등장인물의 수공업 노가다를 보여주는 장면이나, 정의에 대한 책임감을 제기하는 도덕적 질문도요.(피터 파커 청년이 미싱기를 도다닥 거리며 레슬러 스파이디의 복장을 만들 때, 브루스 웨인은 마스크 재질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만장을 해외에 추가로 주문합니다. :-/)

공포를 극복하고 악을 응징하기 위해 총알을 장전해 두며 살아온 심약한 청년 브루스 웨인은 복수의 대리자들이 정작 자신이 응징하려던 악의 위치에 서있으며, 복수가 정의와 동의어가 아님을 몇몇 교훈으로 알게 됩니다. 레이철의 따귀와 암살집단의 교리 덕에 말이죠. 레이철의 말에 의하면 '정의는 균형이며, 복수는 자기만족'입니다. 즉 배트맨에의 길은 균형을 위한 길이지, 자기만족을 위한 피빛 복수의 길이 아닌 셈입니다.

말은 쉽지만 아마도 이 대의 사이의 혼란 때문에 배트맨은 앞으로도 도덕적 싸움을 계속 해야 할 것입니다. 스파이더맨이 그랬고, 프로페서-X도 강단 위에서 돌연변이들에게 그랬겠지요.


2시간 20여분도 꽤 빠듯해 보였습니다. 웨인즈 그룹이 도시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 놓은 모노레일은 뉴욕 지하철 보다 더 지저분해졌고, 깨달음에 근접한 브루스 웨인이 도착했을 땐 도시는 마피아 팔코니의 횡행이 극에 달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영화는 벅차게 돌아갑니다. 아나킨이 [클론의 습격] 때부터 심심찮게 독재정에 대한 옹호를 드러냈을 때 저는 전율했듯이, 브루스 웨인이 검은 마카칠을 칙칙 해댈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사실 '비긴즈'에서 악당들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전력으로 볼때 티벳의 하얀 대지가 [인섬니아]의 캐나다와 닮았는가 주시하기에만 바빴었죠. 그래도 감독이 빚어낸 몇몇 장면들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주고 싶더군요. 전 일단 '허수아비'가 정말 근사했었습니다! 안경테에 가려진 눈매가 심상찮더니 진짜 '악'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더군요.([스파이더맨3]의 그린 고블린 주니어는 이만큼 준비가 잘 되어 가십니까?)

언제 국장으로 진급될지 모를 게리 올드먼의 주름이 조금은 슬펐지만 그래도 반가웠습니다. 이 양반은 형사역을 맡아도 항상 약물이 어쩌구 했었는데, 이렇게 착한 역할이라니.(웃음) 좋은 조력자역에 그 역시 잘 어울리는 모건 프리먼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앞서 두 양반에 비교가 안되는 알프레드 집사님은 단연 최고! 능청스러움과 중후함을 단박에 소유한 이 아저씨와 브루스 웨인은 정말 앞으로도 좋은 짝이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사악한 톤과 강건한 톤을 동시에 보여준 배트맨/브루스 웨인으로서의 크리스찬 베일은 새로운 시리즈의 좋은 적자였습니다.

이 시리즈의 새로운 적자를 성장케 한 선과 악의 교차점 리암 니슨은 악역이 되어도 그 인자하고 정직한 눈빛이라니... 그래서 더욱 강대한 악이라고 해얄까요. 영화가 보여주는 진지한 톤은 이런 배우들의 무게감이 지탱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정말 사고 현장에 항상 남은 조커 카드의 소유자나, 새로운 악당(만약이지만)들이 후작 시리즈에서 이런 무게감을 지탱할 수 있을지요. 그래서 이 시리즈의 2편을 지금부터 미리 기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몇몇 부분은 분명 패착이 보입니다. 누구에게 기대했는데 아니었고, 걔는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운운 이런 후일담은 저에게도 역시 해당사항이긴 합니다. 그래서 굳이 반복할 필요는 없어 보이고.. 저는 수만 마리의 박쥐와 더불어 팽그르 내려가던 이 우아하고도 멋진, 새로운 시리즈의 배트맨을 일단 환영해야 겠습니다. 귀환을 환영합니다.


+ DC코믹스 로고는 처음 봤는데, 멋지더군요 :)
++ 조커씨는 어디서 누가 벌써 '풍덩'시켰을꼬.
+++ 허수아비씨의 절치부심은 정말 기대됩니다.
++++ 생일 파티 때 내쫓은 사람들 중에 클라이언트 있었음 웨인즈 그룹의 미래는(...)


덧글

  • Nariel 2005/07/04 18:10 #

    초음파를 발산하는 발바닥.. 멋지지요!!
  • lunamoth 2005/07/04 18:18 # 삭제

    수공업 노가다에 저도 한표를^^ / 말씀하신대로 연대기를 짜맞추기가 버거워 보이기도 하더군요. 그래도 꽤나 진득하게 밀어부치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
  • 하늘빛마야 2005/07/04 18:26 #

    많은 분들이 실망의 기색을 내비치셨지만, 저는 정말 즐겁게 봤습니다. :D
    아쉬움은 있을 지언정 흠잡을 곳은 없는, 정말 괜찮은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 lukesky 2005/07/04 19:10 #

    그 '부잣집 아들네미'가 수공업으로 도구 만드는 장면은 정말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ㅠ.ㅠ 생각해보면 이친구도 정말 노가다 타입이어요. ^^*
  • THX1138 2005/07/04 20:07 #

    철저한 수공으로 만들던 모습과 해외로 몇백개 주문하죠에서 웃었습니다. ^^ 수많은 박쥐들과 내려오던 그의 모습은 정말 멋있더군요.
  • 직장인 2005/07/04 20:16 #

    저도 스파이더맨의 그림자를 언뜻 느꼈는데,
    그런 유사성이 있었던 거군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 jely 2005/07/04 21:02 #

    SWAT이 등장하는걸보고 팀버튼의 고담시는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죠. 2시간 20분이 짧았다는 말에 동감입니다.
  • 끄레워즈 2005/07/04 21:04 #

    DVD 로 나올 때, 디렉터즈 컷을 기대하는 중입니다. :)
  • 제로나이트 2005/07/04 21:54 #

    어설픈 오리엔탈만 빼면 괜찮게 봤습니다...^^
  • misery 2005/07/04 22:26 #

    저도 보고 싶은데 점점 볼 영화들이 밀리고 있네요. ㅡ_ㅡ;
  • ▒夢中人▒ 2005/07/04 23:42 #

    돈이 힘입니다 ㅇ_ㅇ;; (탕!)
  • ciel 2005/07/04 23:54 #

    재력의 승리랄까요-ㅂ-)b
  • jamf 2005/07/05 01:24 #

    ...어째서인지 아무도 언급을 안하셨는데, 저는 가장 위에 있는 대화때문에 감상이 눈에 안 들어왔습니다^^;
    수공업 노가다, 어떤 분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기껏 닌자들에게 칼쌈을 전수받고는 정작 만들어 쓴건 표창이었다지요. 후후후.
  • neungae 2005/07/05 08:32 #

    언제 보나..(먼산)
  • Hermes 2005/07/05 09:47 #

    우우. 내일이라도 보고 말겠습니다 ㅡ,.ㅡ
  • EST_ 2005/07/05 10:35 #

    두시간 넘는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질 않더군요. 시간만 된다면 다시 보고 싶습니다.
  • Courtney 2005/07/05 11:57 #

    정말 근간에 본 영화 중 최고였어요.
    크레인 박사의 그 요상함과 알프레도 집사님의 중후함이라니~

  • 잠본이 2005/07/05 15:48 #

    피터는 돈이 없어서 자기손으로 만드는거지만...
    브루스는 비밀유지를 위해서 자기손으로 만드는거니 애초에 비교하기가 좀;;;
    (분명 대놓고 하는 짓이었으면 남에게 시켰을거라 생각합니다 ;>)
  • 건전치이링 2005/07/06 14:20 #

    여튼, 최고였습니다
  • 렉스 2005/07/06 14:36 #

    나리엘님 / 아..그게 초음파를 발산한 거였군요;(보고도 모르냐;)

    lunamoth님 / 저는 오히려 탄생에 치중한 나머지, 한 마지막
    30분 되서야 배트맨이 등장할 줄 알았습니다. 초중반까지는
    시치미 뚝 떼고 재벌 아들넘의 고뇌와 뭐 그런 것을 담을 줄;

    하늘빛마야님 / 네..저는 [스타워즈 에피3] 보다 이 물건을 더
    좋게 기억할 것 같습니다 :)

    루크스카이님 / 진지하게 검은색만 추구하는 걸 보면서 저 친구도
    취향 참 어디서 통용되기 힘들겠구나 싶더군요;

    THX1138님 / 시리즈에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박쥐를 활용한 예도
    드물거란 생각이 들더군요+_+

    직장인님 / 뭐 제 생각이니까요; 연대기 형식이라 그런 듯 :)

    jely님 / 감독도 욕심이 다부져 보였고, 안 지치고 마무리를
    잘해낸 듯 싶더군요 :)

    끄레님 / 나온다면 물건이겠군요+_+) 라스 알굴은 비중이 늘지;

    제로나이트님 / 뭐...그 일본 취향도 수긍했습니다.
    사무라이 스폰 피규어도 파는 그 동네인데..뭐 하물며.

    미저리님 / 그래도 미저리님은 그동안 한국영화 잘 챙겨 보셨으니+_+
  • 렉스 2005/07/06 14:41 #

    몽중인님 / 복장이 훌러덩 타버려도 대용품이 언제든 쌓인거 보니;

    ciel님 / 아버지가 이끌어온 회사 어느 부서에 짱박혀도 사장은
    지맘대로 갈아치우더군요;

    jamf님 / 위에 있는 대화는(....)
    아메리칸 닌자들이란(....)

    neungae님 / 5년 뒤 추석 특선으로라도;

    헤르메스님 / 우우..보셨을지!

    EST_님 / 저도 못 보던 장면들을 새롭게 볼 수 있지 싶습니다 :)

    커트니님 / 으흑...빵빵한 배우들이 제몫을 다 잘해내더군요 ㅠ-ㅜ)

    잠본이님 / 에...그렇게 괄호까지 넣으며 같은 선상에 놓은 것은
    도시 속 영웅탄생전기엔 이런 비화 같은 디테일이 있구나..이런 이야기
    였습니다 :) (다른 감독이 만약에 [배트맨 원년]을 만들었다면 브루스
    웨인의 격투기술이 제왕학에 기인했다...이런 해석을 했을지도 :->)

    건전치어링님 / 깔끔한 결론이군요. 네 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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