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하균은 영화 말미에 "우리 이런데서 말고 다른데서 만났으면 참 재밌었을텐데.."라고 말하며 계면쩍은 듯 피식 웃습니다. 얼굴에 사연 담긴 듯한 상처는 났을지언정 인성은 좋은 사람이었던 정재영도 화답의 미소를 보냅니다. 이 장면은 꼭 어디서 본듯한 기시감을 발휘합니다. 진영은 다르지만 신하균은 순박한 미소를 좀더 온화한 형태로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보여준 적이 있었죠.
차이가 있다면 [공동경비구역]에서의 공간감은 일종의 실제감입니다. 거기엔 남북을 넘나든 우정을 둘러싼 총기 사고를 무마하려는 양 진영의 현실적인 정치 감각과 논리가 가득차 있으며, 그 은폐된 조각조각을 모으려는 극소수의 노력이 버거움을 보여줍니다.
반면 [웰컴 투 동막골]의 공간감은 일종의 판타지입니다. 도시인들이 시골마을에 품는 동경의 정서 비슷한 따사로운 햇살의 정서가 영화 속 가득한데, 그 선이 너무 느끼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을 수준으로 잘 조절이 된 편입니다. 무엇보다 장편 영화도 아닌 하나의 에피소드로 충무로 입성을 끊은 신인급 감독의 손놀림이라는데 그 놀라움이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그 신인감독의 '카메라 흔들기' 같은 수법은 여전하더군요. 동의하기 힘든 기술법이기도 합니다. 마치 영화를 만드는 행위에 대한 자기탐닉 같기도 해요.
장진을 비롯한 사람들의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타이밍이 제법 잘 맞는 유머스러움에 관객들은 쉽게 동요하고 수긍합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 캐릭터의 채색을 잘해내는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영화를 사뭇 안정된 형태로 보이게끔 합니다. 그래서 영화 전체가 무난하다는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게 장점일수도 있겠지만, 무대에서 선보였던 이 창작물이 영화에서 다른 독창적인 생명력을 얻길 바라던 쪽에겐 좀 아닐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무난함과 순박한 정서를 내세우는 이 영화가 그런 순수함을 비유하는 장치는 '하얀 색'입니다. 그것은 동막골로 인도하는 나비일수도 있으며, 강혜정의 머리에 꽂힌 꽃잎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인을 끌어안는 순박함은 '하얀 강냉이 눈발'로 가시화됩니다. 마지막 남북의 병사들은 이 순박함을 지키기 위해 하얀 눈밭 위에서 총탄의 '순교'를 감행하게 됩니다.
[웰컴 투 동막골]은 이처럼 가시적이고 주입하기 쉬운 감동적인 장치로 영화 말미까지 진행되는데, 지금 이 영화에 쏟아지는 호의는 그런 쉽게 주입되는 감동 장치로 인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막상 본 저로선 그렇게 재미나고 특징적이진 않았습니다. 맷돼지 사냥 장면에서 드러나듯 독특한 정서를 가질 수 있는 부분이 분명 많았던 것 같은데, 이 영화를 구성하는 구성물들이 조율하기 쉬운 감동 장치와 누가 음악을 맡아서 누구 분위기가 난다는 느낌말고는 어떤 텅빈 공허함마저 조성하니 말이죠.
[웰컴 투 동막골]은 2시간여 남짓이 주는 간명한 판타지입니다. 소중한 것을 꼭 지키고 싶다는 순박하지만 절박한 믿음 외엔 이 영화가 관심을 두고 있는 일은 얼마 없는 듯 합니다. 여기서 양민학살이나 미국의 역할 같은 한국전 이면의 정치적이고 민감한 표피들은 이야기를 장식하는 껍질일 뿐 두터운 질감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조장한 기쁜 나쁜 눈물 장치보다야 이게 나은 편이지만, 이쪽의 심심함도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 후반부 폭격기들을 보며 저것들이 동막골을 히로시마로 잘못 알고 있는게
아닌가 했습니다.
+ 동막골 사람들은 참 존재감이 없는 사람들이더군요. 전 촌장님(?)이 몹쓸 일을
당할때 비로서 저 분도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나마 강혜정도 경이로운 발음으로
사투리를 이야기하다가 중후반부 존재감 희석. 시간이 없더라도 그들에게 뭔가
캐릭터성을 넣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텐데 말이죠.




덧글
dethrock 2005/08/26 14:55 #
오늘 12시 10분에 시작하는거 보고 왔습니다.근데, 보다가 하품만 찍찍...;;;
iamsia 2005/08/26 15:32 #
와하.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히로시마에서 소리내서 웃었;;;
뭐 폭격은 정말 엄청나던데요-_-)b
스미스 일병 구하기... 풉
나비효과 2005/08/27 00:00 #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끌리지 않는군요 -_-
하늘빛마야 2005/08/27 02:28 #
저는 보면서 살짝 지루했습니다.재미는 있었지만 텐션이 너무 낮았던 듯.
같이 같던 친구 두녀석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더군요.
그 중 하나는 "민족주의는 질색이야"라 말했고요.
영원제타 2005/08/27 22:44 #
사실, 동막골 사람들은 이미 조아노이드로 조제된 사람들로서…(펑)
렉스 2005/08/29 06:58 #
데스락님 / 음; 임팩트가 부족하셨나 보군요;iamsia님 / 성의있게 만든건 인정하는데 뭔가 좀 그랬어요;
나비효과님 / 뭐 그런 영화가 있죠.
하늘빛마야님 / 어떤 양반은 이 영화가 좌파끼가 있다고 하더군요.
푸.하.하.하.하.
영원제타님 / 그..그런 건가요;
MAGO 2005/08/29 06:59 #
동네하나 부수는데 어찌나 그리 많이 가는지... 한국적 판타지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전 그래서 좋아해요.
MAGO 2005/08/29 06:59 #
앗! 리플 시간이 비슷하네요!
내미 2005/08/29 16:34 # 삭제
저도 봤는데 그냥 그럭저럭 괜찮았어요.많이 기대를 안하면 돼요 영화는... ^^
멧돼지 사냥 장면이 제일 재밌더군요.
렉스 2005/08/31 09:51 #
MAGO님 / 그런 환타지에 대해 관대해질수도 있었는데, 요즘 제 정신은 좀 황폐화인건 확실한 듯 합니다내미님 / 맷돼지 장면은 좋더군요 :)
푸르미 2005/09/14 09:46 #
저도 멧돼지 장면은 참 좋더군요. 트랙백합니당
렉스 2005/09/15 20:46 #
푸르미님 / 정갈한 문장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