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ON : 스티브 잡스 [집히는대로 책담

가령 렉스씨가 애플에서 일을 한다고 치자. 아,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냥 그렇다고 치자. 나는 풍운의 꿈을 안고 나만의 아이템을 머리 속에 박은 채 암중모색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책상지키미 경력직 신입이다. 이런 나에게 어느날 CEO인 스티브 잡스씨가 다가온다. 아..입소문으로만 들었던 그의 명성과 그의 직책에 난 금새 심적으로 짓눌린다. 그런 그가 나에게 기회를 준다.

"이봐, 퐈악~. 어디 자네가 품고 있는걸 한번 꺼내보라구."

금세 용기백배한 나는 주변에 있는 이면지 중 한장을 집어서 내가 품었던 아이템을 와그르 쏟아낸다. 맥박수의 가속도만큼이나 나는 이 순간만큼은 최고의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싶다. 그렇게 숱하게 풀어내니... 음? 정작 잡스씨는 조용하다.

내 말을 묵묵히 듣던 잡스씨는 집무실로 다시 저벅저벅 걸어간다.

그 다음 날. 잡스씨가 흥분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나는 그 표정을 보니 일순 안도가 된다. '그래! 난 어제의 그 설명으로 인해 잡스씨에게 각인된거야!' 의기양양해지는 내 팽팽한 심장을 믿고 오늘은 잡스씨를 상대해야겠구나라고 맘 먹는 찰나.

"이봐, 퐈악~. 어제밤부터 내가 생각해온 아이디어를 들어보겠나?"

어..어라? 맙소사. 지금 잡스씨는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 6개월 동안 꼼꼼하게 수집한 자료와 기획에 의거한 아이디어 - 바로 내가 어제 설명했던! - 를 거침없이 자기 것인양 풀어내고 있다. 그야말로 어이 없구만이라는 생각을 품어서 열매를 발하기 전, 바로 그 타이밍에 잡스씨는 나를 제압한다.

"어떤가? 퐈악~.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나? 오늘 있을 부서변동에 미리 준비하고 자네들과 6명은 올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이 일을 완료해주기 바라네."

이렇게해서 나의 아이디어는 공기 속에서 사라져 잡스씨의 호흡기에 흡수되었고, 그가 뿜어낸 입김 덕에 우리들은 가열찬 스케쥴 안에서 시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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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이런 것이다. 누구나 결점이 있고 중심 부재 중이고 갈피를 잡기 힘든 존재이다. 천재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천재들은 그 우왕좌왕을 우리에게 매혹이라는 단어로 현혹케 하는 존재들이다. 이 책은 그 매혹과 질시를 품게 만드는 존재 중 하나인 애플 CEO인 스티브 잡스에 관한 책이다.

정말 우리 시대는 이제 더이상 기름지고 얄팍한 위인전을 원하지 않는 것일까. 통렬한 문장과 명백한 사실 안에서 스티브 잡스의 오만함과 이해 못할 성격은 낱낱이 드러난다. 그 와중에 그와의 악연으로 유명한 워즈니악과 카첸버그, 아이즈너 등의 이름이 차례차례 호명되고 이 대목부터 비단 잡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흥미진진한 거물들의 암투기가 우리의 눈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창업자라는 빛나는 왕관에도 불구하고 주주들과 임원들의 음모에 의해 쫓겨나고, 사약을 뿌리치는 앙칼진 손놀림처럼 곧은 자존심 하나로 버틴 채 자신의 죄과에 대한 자문자답을 거부하는 그 당당함이란! 잡스의 그 당당함의 기저엔 복잡한 수리를 따지거나 애초부터 어긋난 도덕심을 품은 캐릭터의 기원은 없었다. 그냥 그는 처음부터 그렇게 타고났던 것이다. 일종의 무색투명의 상태랄까.

상대방의 아이디어 뿐만 아니라 책상까지도 위협하는 독식욕이나 어떤 증기기관차 못지 않은 추진력의 정체는 어떤 타고남이 있었다는 것. 물론 그에 대한 힌트로 그의 출생과 채식주의, 히피 시절의 무도덕 등을 제시하곤 하지만 이 역시 해독에는 힘겨움이 있다. 악마는 아니되 악마에 근접한 그런 독불장군 정신을 들춰내고 보여주긴 하지만 저자들 역시 그런 악마성에 매혹된 증거는 여러군데에 있다.

코엑스몰 애플 센터에 보면 알 수 있듯 우리를 유혹하는 견고함과 섬세함을 그대로 간직한 애플의 데스크탑들. 이 모든 것들이 잡스가 애초부터 추구했던 '외형의 중요함'과 '유저에게 제공되는 최소한의 간명한 인터페이스'가 낳은 결과들이다. 최근 우리에게도 점차 그 브랜드 가치가 주입되는 애플과 픽사의 결과물들이 잡스가 일관되게 추구한 그 정체불명의 고집의 소산임을 드러낸달까.

그럼으로써 책이 권말에서 에필로그까지 제시하는 것은 바로 잡스의 다음 맞상대가 빌 게이츠라는 전망. 저자들은 [애플의 탄생 - 퇴출 - 넥스트 - 픽사 - 애플 귀환 - 아이팟.맥 혁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드라마에 이은 속편을 스스로 기대하는 듯 하다. 구경하기에 재미있다 그거지?

사실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지식이 극히 모자란 나같은 사람에게 몇 대목이 쉬이 넘어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이야기 자체가 재밌다. 게다가 제프리 카첸버그와 존 래스터, 아이즈너 등의 이름이 호명되는 픽사 - 디즈니 - 드림웍스 대목은 개인적으로 술술 넘어갔다. (그중에서 존 래스터가 드림웍스로 간 카첸버그에게 여전히 호의를 가지고 '곤충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해용' 어쩌구 하다 뒷통수 맞은 대목은 작은 웃음을 자아낸다 : 양 진영이 만든 그 애니들의 제목은 여러분들도 잘 아실게다)

이외에도 기업 가치는 묻지도 않은 채 투자가들의 지원으로 부풀려진 '닷컴열풍'의 거품 시대와 대학생 숀 패닝군이 하루 16시간 일하면서 뭐 빠지게 구축한 '냅스터' 이야기들은 잡스 이야기 외의 솔솔한 재미를 부여한다. 우리는 그런 과도기들을 경험해왔고(또는 구경해왔고) 지금도 이런 이야기들은 진행중이다. 아무튼 재밌지 않은가? 공룡 밴드 메틀리카는 냅스터에 대해서 으르릉댔고, U2의 보노는 애플 행사장에 등장하고. 앞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췌장암 수술로 다시금 건강해진 스티브 잡스. 어디서 인용한 말마따나 그렇다. "Life is Random" 그가 좀더 겸허해지고, 관망할 줄 알고, 차분해졌다고 말하지만 그 역시 모를 일이다. 랜덤이니까. 여전히 시대는 진행중이다.

결론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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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계란소년 2005/10/11 19:04 #

    안 사요. 전지시간 늘리기 전엔.(퍽)
  • 제로나이트 2005/10/11 19:59 #

    계란소년님 말씀에 동감[...]
  • 정worry 2005/10/11 20:12 # 삭제

    80기가 비디오버전 유투팟이 나올 때.... OTL
  • 계란소년 2005/10/11 22:16 #

    ...라고 하지만 피눈물 흘리며 지금 있는 건 써야죠ㅜ.ㅜ
  • Sage Labri 2005/10/12 08:39 # 삭제

    처음엔 월급나오면 사볼까~싶었는데 지금은 피부로 와닿는 가격이 장난이 아니에요 덜덜덜
  • Hermes 2005/10/12 09:09 #

    후우. -┏; 역시 마지막의 압박.
    그나저나 저 책은 정말 읽고싶군요.
    도서관 사서누나에게 부탁해서 들여놓으라고 해야겠습니다.
  • 시대유감 2005/10/12 10:02 #

    셔플로 만족하고 있으므로 나노를 사지는 않았지만,
    저 책은 읽어보고 싶습니다.
  • THX1138 2005/10/12 11:15 #

    사죠 ;;
  • Forthy 2005/10/12 12:55 #

    잡스형아 즐! -┏
  • 끄레워즈 2005/10/12 15:11 #

    저 결론에 된통 걸려 들었지요[...]
  • hkmade 2005/10/12 15:33 #

    Life is random.. 화악 필이 꽂히는군요. 몇년전에 타계한 FULL HOUSE의 저자 스티븐제이 굴드가 얘기했던 시스템의 변이가 곧 진화의 본질.. 이라는 얘기가 갑자기 떠오르는군요. (별 상관없는 얘기일듯.. ) ..
    또 다른 멋진 천재들의 유희들을 기다려봅니다.
  • 렉스 2005/10/13 11:04 #

    계란소년님 / 불평은 여전한데 아무튼 비슷한거 또 발매하는군요;

    제로나이트님 / 그렇군요;;

    정worry님 / 무서운 양반...또 뭘 출시하는군요;

    Sage Labrie님 / 전 지금 월급 한 3배 주면 살까 싶어요;

    헤르메스님 / 오..신청하면 바로 구매가 가능?+_+

    시대유감님 / 나름 잼나더군요 :) 교훈 보다는 재미.

    THX1138님 / 불가항력입니까;

    포티님 / 노골적이시군요;

    끄레님 / 올해만 두개(....)

    hkmade님 / 현대 생활에 있어 진화란 시스템의 변이란건가요...와.
    아무튼 무섭도록 변하고 있습니다.
  • Nariel 2005/10/13 11:21 #

    홍홍... 생일 선물로 이거 원서 받기로 했사와요;;
  • 렉스 2005/10/14 10:24 #

    나리엘님 / 나렐님 버전 해석본도 출간해 주세요;
  • RocknCloud 2005/11/17 14:16 #

    안녕하세요~ ^^ 처음뵙겠습니다.
    이책에 대해 나리엘님께 여쭈었더니, 렉스님의 포스팅을 추천해주시더군요.
    잘 읽었습니다.
    결국엔 사야겠습니다.
  • 렉스 2005/11/22 09:21 #

    RocknCloud님 / 앗...반갑습니다 :) 추천이라..부끄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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