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왕의 남자]

* 안 본 이들을 위한 스포일러 보호는 애초에 하지도 않는 인간이니 알아서들 피하거나 즐기시라 *

공길(이준기)이 얼굴을 드러내는 바로 그때부터 여성 관객들은 탄성을 뱉는다. 이어 그네들은 남성 동무들과 더불어 처선(장항선)과 연산(정진영)이 뭐라고 한마디라도 할라치면 미리 끼득끼득이다.

청컨대 그 날 낄낄거린 관객들 모두 하얀 눈이 내리는 축복받은 그 하루에 앞으로 한번, 뒤로 한번 도합 두번씩 길에 나자빠지길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더불어 발목 인대의 늘어짐과 코뼈 파손도 기대하는 바이다.

이준익 감독이 일단 많이 늘었다. [황산벌]은 영 미덥지 못한 작품이었는데, [왕의 남자]에서는 한결 나아진 테가 났었다. 장생(감우성)과 공길 그리고, 육갑/칠득/팔봉(3인조 만세!)이 궁에서 첫 무대를 가지는 부문의 긴장감이 대단하다.

감독은 여기서 연출의 묘를 발휘하는데, 시중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풍자 무대의 표주박 ** 장면과 출산 장면만 노출한 채 그들을 바로 궁으로 인도한다. 전반부 사람들을 박장대소케 한 장면들은 궁 특유의 경직성 때문에 발휘되지 못하는데 이어서 그네들이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느냐를 풍자극의 마지막 디테일로 승부케 한다. 비로소 보는 이들도 영화 속 그네들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연산은 녹수 말마따나 확실히 '미친놈'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선왕의 도리를 이어받은 자들의 압박을 물리칠 가슴 속의 칼과 활을 휘두르는 일과 새롭게 자신을 들뜨게 만들 유희거리 뿐이다. 이 (유희)왕의 남자가 되는 공길은 연산에게 있어 들뜸을 만드는 유희거리이자 상실된 모성과 트라우마를 씻어내리게 하는 정화 장치이다.(녹수는 동그란 젖가슴을 지닌 육체로써의 어머니로만 기능한다)

그런 공길을 상실한 (외줄타기 광대)왕 장생은 자신의 남자가 그렇게 유희로 전락하는게 싫다.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이미 공길은 이해를 갈구한다. 자신이 왕에게 있어 단순한 유희가 아닌 어떤 가능성이 될 수도 있음을 안다.

하지만 노련한 살찐 여우 같은 처선의 계산을 압도할만치 연산은 너무 곪을 정도로 미쳐있다. 이윽고 연산의 놀이는 제어불능이 되어가고 공길마저 지쳐간다. 그래서 영화 내내 견딜 수 없는 상태로 발만 바동거린 장생이 '남자의 남자로서' 희생을 택한다. 비로소 두 남자는 그을려져 상실된 신체부위와 그어진 환부를 가지고도 자신들만이 같이 노닐 수 있는 외줄의 세계에서 신명을 발휘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연산은 유희를 넘어선 감동의 일체를 잠시나마 확인하고, 녹수는 언제나 그랬듯 의연하다.(그녀가 의연함을 지탱하지 못한 유일한 대상은 공길의 하얀 피부였다) 그런 과정에 닿기까지 궁 안팎은 피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왕조의 피보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황망하게 수레에 실려나가는 육갑의 주검만이 우리에겐 유일한 설득력이었다.

왕조의 공간 안에서 천한 것들이 일으킨 짧은 유희의 분란, [왕의 남자]... 음 좋았다.

by 렉스 | 2006/01/06 10:02 | [집히는대로 영화담 | 트랙백(4) | 덧글(27)

Tracked from blackthone's.. at 2006/01/06 11:59

제목 : 이준익의 <왕의 남자>
[#GDIMAGE|10001445_1385375.jpg|200601/04/45/|mid|520|347|pds2#] 저에게 이준익이라는 사람은 &lt;황산벌&gt;이라고 하는, 황산벌 전투에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코미디 영화를 찍은 감독 정도로만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lt;황산벌&gt;이라는 영화를 본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 다소 무시하는 감이 없진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준익......more

Tracked from EST's nEST at 2006/01/07 00:46

제목 : 왕의 남자- 2006.1.5.CGV불광
<왕의 남자>는 개인적으로 참 오랜만에 극장에서 만나는 우리 영화다. 포스터에서 받은 범상치 않은 느낌(혹자는 낚시질이라고 표현하기도)도 그렇고, 예고편에서 느낀 남다른 힘도 그렇고, 무언가 주저주저하게 되면서도 결국 다소 즉흥적으로 극장으로 향하게 되었는데... 뭐라고 표현을 하면 왠지 퇴색이 될 것 같아서 딱히 말하기가 힘들다. 대박이라고 해야 하나 물건이라고 해야 하나. 롤러코스터 영화 외에 상영시간 내내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more

Tracked from 2nd round : .. at 2006/01/09 22:55

제목 : 왕의 남자
역시 원작인 "이"는 못봤으니까 비교는 생략하고요 [...]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장생 역의 감우성, 연산 역의 정진영을 비롯한 주연들의 훌륭한 연기와 육.칠.팔 콤비의 유쾌함은 이 영화에서 첫번째 미덕입니다. 신분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우면서 카리스마를 가진 장생과, 최고의 신분이지만 어디선가 모르게 슬픈 연산의 모습이 잘 표현되었으며 공길, 녹수, 처선, 여러 조연들과 육.칠.팔 콤비도 빼......more

Tracked from 달밤에 산들바람 at 2006/01/12 00:45

제목 : 다 놀고나면, 무엇이 남겠어요?
광대 패에서 함께 지내던 장생(감우성)과 공길(이준기). 장생은 공길이 밤마다 양반들에게 끌려가는 것을 못마땅해 합니다. 어떤 사건에 휘말려 광대 패를 떠나게 된 장생과 공길은 기약없는 도망 길에 오릅니다. 장생은 공길에게 한양으로 가서 큰 판을 벌여 놀아보자며 한양으로 가자며 공길에게 함께 한양으로 갈 것을 권합니다. 놀이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놀이죠. 어렸을 때 생각해보세요. 친구들과 모여서......more

Commented by 윤사장 at 2006/01/06 10:16
음.. 좋았다. 짧은 한 마디에 모든게 들어 있는거 같네요
Commented by Forthy at 2006/01/06 10:27
시종일관 장생의 줄타기같이 불안불안했던 감정선이 압권이었습니다. -_-b 정진영 씨의 연기력 때문에 오히려 여자들이 웃었던 것 같네요. 한참 즐겁다가 싸해질때 공기가 달라지는게 느껴질 정도;;;
Commented by Nariel at 2006/01/06 10:34
오오... 오늘 글... 소름끼칩니다!!! 영화도 그랬는데. (-_-)=b
Commented by 도일 at 2006/01/06 10:38
어여 봐야하는데..(먼산)
Commented by EST_ at 2006/01/06 10:44
잘 읽었습니다. 명료하게 가슴에 푹 와서 꽃히는 말씀이군요.
Commented by 쮸니 at 2006/01/06 11:19
아~ 정말 육갑, 칠득, 팔봉의 감초 연기는 최고였죠^^b
만약 그 3인방이 없었따면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그 묵짐함에 눌려 재미를 느끼기전에 숨이 막혀 뛰쳐나왔을지도..
자세한 비평글을 보고나니 영화 장면이 새록 새록 뜨오르네요^^
Commented by Sage Labri at 2006/01/06 11:28
음..좋았다..
이거 진짜 임팩트 엄청 크군요 하하
Commented by 가릉빈가 at 2006/01/06 11:31
저도 로그인하고 난 후 밸리에 "유희왕의 남자"로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유희♡카이바"라인인가? "유희♡조이"라인인가? 하며 상상의 나래를...;;
Commented by kritiker at 2006/01/06 12:07
흐흣, 저도 내일 보러 갈래요.
Commented by devi at 2006/01/06 13:01
위의 영화 사진이 대략적인 스토리를 암시하는 것 같네요 ㅎㅎ;;
꼭 한번 보고 싶습니다 ㅠㅠ
Commented by 뽀스 at 2006/01/06 13:49
볼 사람이 없어용~ ㅠㅠ
Commented by 달바람 at 2006/01/06 14:00
빨리 봐야하는데ㅜ_ㅜ
아,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싸움의 기술], 정말 멋집니다. 꼭 보세요>_<
Commented by 요나1 at 2006/01/06 15:17
3인조 만세!!ㅋ
Commented by purple at 2006/01/06 15:27
저도 개봉날보았습죠^^;
무대와 현실을 바라보는 연산과 광대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현실에서 제대로 연기?하는 연산과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현실?의 벽을 안고 살아가는 광대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태어나도 광대가 되려는 그들..
기억에 남을만한 영화였네요^^;
Commented by ryan at 2006/01/06 17:55
잘 정리된 감상이네요. ^ㅅ^
Commented by Mosippa at 2006/01/06 18:30
"청컨대 그 날 낄낄거린 관객들 모두 하얀 눈이 내리는 축복받은 그 하루에 앞으로 한번, 뒤로 한번 도합 두번씩 길에 나자빠지길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더불어 발목 인대의 늘어짐과 코뼈 파손도 기대하는 바이다."
전 이런 공손한 화냄에 무척 동감합니다.
Commented by 채다인 at 2006/01/06 20:00
밸리에서 보고 순간 '유희왕의 남자'로 봤습니다
드디어 렉슈님도 위험한 동인의 세계에 빠진 줄 알았(...-┏;;; )

그나저나 왕의 남자는 여기저기 평이 좋더군요, 언제 한번 시간내서 봐야겠어요
Commented by 아페리티프 at 2006/01/06 21:51
잘 읽었어요~아, 그 연극의 마지막 디테일이 아니라, 공길의 재치입니다. 저는 그렇게 봤어요^^; 공식홈에 그렇게 써있었고..최근 불타오르고 있어, 왕의남자 리뷰를 보는 것이 새로운 재미가 되었습니다^_^
Commented by 메피스토 at 2006/01/06 22:58
멋진 연산이군요. 보고싶은 영화에요.
p.s : 여담이지만, 5문단의 (유희)왕...순간 떠올랐습니다. 장생=카이바?
Commented by 렉스 at 2006/01/07 10:09
윤사장님 / 네, 문장력이 부족해 마지막에 저렇게 처리 ㅠ.ㅜ)

포티님 / 아..정말 초반에 완전히 굳은 연산의 표정은 압권.

나리엘님 / 아이쿠...칭찬 감사드립니다!

도일님 / 어여 보시길(가까운산)

EST_님 / EST_님 글이 좋던걸요><)

쭈니님 / 마지막 장면에서 그 다섯명이 노니는 장면이 얼마나 따스해 보이던지...

Sage Labrie님 / 책임없는 표현이었는데, 반응이 의외로;

가릉빈가님 / 화이콰(....)

크리티커님 / 잼나게 보세요><)/

devi님 / 네 신경써서 고른 이미지; 헤헤

뽀스님 / 영원님과(....)
Commented by 렉스 at 2006/01/07 10:09
달바람님 / [싸움의 기술] 음...평이 갈리던데. 달바람님의 추천이라니!

요나양 / 약방의 강력감초!

퍼플님 / 아..그런 대칭으로 표현이 가능하네요+_+) 멋지세요.

ryan님 / 아이고..그렇지만도;

Mosippa님 / 아...냉소는 한계가 있는 법이라;

채다인님 / 위험한 세계의 안부는 어떻습니까;
[동막골]도 개봉 당시 여기저기 평이 좋았죠. 결국 자신에게 어떤 영화일지는
보고 난뒤에 판단할 일 같습니다.

아페리티프님 / 앗...지적 감사드립니다. 그것이 공길의 재치였군요;

메피스토님 / 음...멋진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광기입니다.
그 광기에 카리스마 같은 수사는 사용하고 싶지 않네요. 그냥 미쳤더군요.
Commented by 니아브 at 2006/01/07 11:06
늦은 감상이나마 이리 남겨봅니다..... 확실히 저도 막상 몰입한 부분은 왕 앞에서 광대들의 연기가 처참하게 망가질 때의 조급함...이었습니다. [소리지르는 아가씨들도 많았구요] 저도 '유희왕의 남자'로 링크타고 왔습니다.[하하;] 링크해도 될까요?
Commented by shuji at 2006/01/08 13:47
따로 주연 조연이 없이
모든 출연진들의 연기력이 참 좋았던 영화.
이준기..정말..너무 이뿐남자데요~~^^
Commented by 나비효과 at 2006/01/09 00:48
저는 좀 더 잔혹하게 밀어붙였으면 더 좋았을 것 같더군요.
'질투와 열망이 부른 피의 비극'에 <혈의 누> 정도의 고어를 기대...
(이건 15세라고!!!)

색감도 비슷했잖아요 (툴툴)
Commented by 렉스 at 2006/01/09 10:03
니아브님 / 제목이 오해가 많군요. 흐흐.
전 링크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

슈지님 / 저도 이준기 허리 보고 놀랬;;
헤헤..오랜만입니다 :)

나비효과님 / 녹수는 공길의 배에 칼을(....)
미술은 기대했는데, 조금 부족하더군요.
Commented by JyuRing at 2006/01/13 00:44
저도 어제 2번째 보고 왔는데 다들 어째서 전혀 웃기지 않은 부분에서 웃고 핸드폰을 꺼내는지 이해할 수 없더군요. 매너영화관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영화를 즐길수가 없습니다 T_T
Commented by 렉스 at 2006/01/13 10:47
JyuRing님 / 웃음은 코드의 문제라고 쳐도 핸드폰은 정말 예의인데....
요즘 관객들 문제 많습니다. 암튼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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