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1월 16일
[야수] : 미완의 상태에서 발톱을 세우다.

[야수]의 초중반은 마치 [공공의 적] 양편을 믹스한 것처럼 보인다. 장도영(권상우)이 거침없이 욕을 내뱉으며 양아치들을 덮칠 때 사람들은 대리만족감으로 낄낄 웃고, 이우진(유지태)이 법조계 고참 변호사와 범죄 거물 앞에서 당당함에 맞설 때 그의 승리를 원하게 된다.
그러나 [야수]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그 한계상황에서도 '범인을 검거했다'는게 아니라 닿기 힘든 사회악의 옷자락을 미처 잡지 못한 젊음의 열패감이다. 그리고 그 열패감을 극복하고 초극하는 것은 하나의 '야수성'임을, 그런 치열함을 그려내고 있다.
이렇게 적고 마무리하면 [야수]에 대해서 많은 것을 긍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마무리하기엔 아쉬움이 군데군데 묻어있는 작품인 것이 일단 문제겠지.
유지태가 한 인터뷰에서 그랬던가.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만든 젊은 영화라고. 유지태의 말은 결국 이 영화가 조각조각의 유기성을 잇지 못한 미흡한 작품이라는 우회적인 토로이다. 감각적이고 시종일관 사람들의 눈을 붙잡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세한 디테일의 공정에는 닿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공을 들였을 '라이터'나 '엄지손가락'의 디테일들은 감독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라이터는 흔한 아이템이었고, 엄지손가락은 뜨악하다.
[말죽거리 잔혹사]로 인해 진짜 영화배우라는 자각을 얻었다는 권상우는 몇몇 부분(그것도 중요한 후반부에서 특히나)에서 고착화된 패턴으로 굳어버리고 만다. 사실 유지태도 관객들을 설득하지 못하는데, 이들 둘의 관계가 '야수성의 전이'라는 후반부의 총성을 낳는 관계임을 볼 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둘의 결합을 위한 초반부의 공정도 치밀하진 못하다.(류승완이 만든 장편 중 제일 아니다 싶었던 [주먹이 운다]가 새삼 잘 만든 작품임을 실감케 한다!) 두 배우의 으르렁대는 야수성을 끄집어내지 못한 패착은 아무래도 감독에게 돌려야겠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비트][태양은 없다][무사]의 김성수라고 잘못 알고 있는 듯 한데, 신인 감독 김성수에게 많은 패착의 책임을 물을 순 없을 듯 하다. 몇몇 장면만이 아니라 영화는 확실한 야심이 보이고 그에 걸맞게 윤기도 난다. 덜 찰진 대사, 국어책 읽는 단역들, 후반부가 화룡정점이 아닌 구색으로 보이게 만드는 편집. 이 모든 것은 내일의 영광을 위한 신인감독의 첫 여정 탓일 것이다.
그러게. 극중 장도영 말마따나 "꼬우면 니가
+ 그래도 장도영 동생역 맡은 애의 연기는 참말로 심했다.
+ 신해철 부인 되시는 분은 립씽크 안되서 제가 다 죄송(...)
+ [동막골]의 히사이시 조 보다 [야수]의 카와이 켄지가 더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