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3월 10일
스트러글링(5) : 존재, 황금시대가 시작되다.
+ 스트러글링 : 그 모든 것의 시작.
+ 스트러글링(0) | (1) | (2) | (3) : 무한궤도부터 솔로 2집까지.
+ 스트러글링(4) : 넥스트의 시대가 개막하다.
- 솔로 2집까지의 행보는 '시퀀스'와의 머리싸움이었다. 넥스트의 행보를 택한 것은 다시 '사람'들과의 음악 만들기를 위한 것이었다. 덕분에 넥스트 데뷔반은 시퀀스와 사람 사이의 중간, 변종 테크노 락밴드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이제 그 다음 행보로 나아갈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치가 못했다.
단기 사병 특수기동대에 근무하던 당시, 부상을 입은 그에게 "연예인이면 다냐"며 가혹한 린치를 가하던 이들과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밤길에 어렵사리 만들어낸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같은 작업물이 가져다준 피곤함은 그를 '어떤 유혹'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 사건 이후 콘솔 작동법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그에게 새로운 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입을 다시금 야무지게 물고 진행한 넥스트 2집은 그런 상황이 자아낸 악전고투가 반영되어 있다.
- 이성행씨가 작성한 넥스트 2집의 해설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째서 넥스트의 음악을 듣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면 많은 대답들 중 빠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앨범이 나올 때 마다의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이라는 대답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나에게 있어 다소간 수정이 필요하다. 넥스트 2집 [Being : 존재]부터 넥스트는 비로서 '앨범이 나올 때 마다의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을 부여한 밴드로 탄생한 것이라고. 이 앨범으로 인해 본인은 이 글을 적게 된 계기를 만든 것이 아닐까. 이 앨범으로 인해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신해철의 모든 음악을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게 아닐까 한다.
- 악전고투의 상황 중 하나의 풍경을 대라면 다음과 같다. 더이상 드럼을 잡기 힘들었던 이동규가 베이스로 포지션을 옮기고 정기송이 기타를 맡은 상태로 몇몇 곡의 녹음을 시작하며, 세션을 위해 '심지어' 송골매의 드러머 이건태씨까지 모시는 상황으로 2집은 진행이 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넥스트의 미래와 합일하지 못한 정기송의 탈퇴 선언이 이뤄지고, 신해철의 김세황에 대한 '첫 프로포즈'가 시작된다. 하지만 다운타운의 일원이었던 당시 김세황은 고사의 뜻을 밝히고 다른 기타리스트를 천거하니 바로 부산 출신 메틀계의 전설이었던 프라즈마 출신의 임창수였다.(!) 그에 이어 역시나 프라즈마 출신을 거쳐 권인하 밴드 등에 활동했던 이수용까지 드럼에 가세하니 그제서야 제법 4인조의 진용을 갖췄던 셈이다.
이후 녹음은 끝나 넥스트의 새 앨범 [존재]는 94년 5월 빛을 본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임창수는 '아, 해철아. 나는 안 되겠다, 나는 제작을 해야지 지금 기타칠 때가 아니다'라는 말로 여성 3인조 에코의 앨범 제작(프로듀싱?)을 위해 탈퇴를 다시금 선언하게 된다. 김세황에 대한 신해철의 프로포즈는 그 이후에야 먹히고 만 것이다. 그때가 94년 8월이었다.

넥스트 2집 - The Return Of The N.EX.T Part 1 : The Being(94)
1. The return of N.EX.T(Instrument)
2. The Destruction of the shell:껍질의 파괴
I) Overture
II)The shell
III)The joy for the Destruction
3. 이중인격자
4. The dreamer
5. 날아라 병아리
6. 나는 남들과 다르다
7. Life Manufacturing(Instrument):생명생산
8.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
그런 의미에서 앨범 내에 들리는 임창수의 전설 같은 기타는 정말로 유물로 남은 셈이다.(그가 훗날 음향 회사에서 돈을 제법 벌었다는 소식을 들려준 것도 나름 감회였다) 예의 신해철식의 과장된 듯한 인트로 1번으로 시작하여, 이어서 들리는 2번 트랙이 안겨다 준 충격은 지금도 유효하다.
속사포 같은 랩핑과 훵키한 정기송의 기타, 전자음이 교차하던 사운드만 들려주던 넥스트는 신보의 2번 '껍질의 파괴'에서 정말이지 작정한 듯이 충격파를 먹이고 만다. 신해철은 10분 동안 스래쉬 메틀 리프와 키보드를 경쟁시키고 그 안에 '그나마 수위를 낮춘' 가사로 통렬하게 대한민국적인 시스템을 갈갈이 씹는다. 심연 같은 바닥의 음에서 드럼을 난타하는 이수용의 수훈도 높이 살만 하다. 심연을 책임지는 리듬 파트를 믿고 임창수와 신해철은 양 날개의 활강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릉거리는 기타와 대기를 울리는 전자음으로.
세상의 모든 고통과 좌절과 분노를 내게 다오
영원히 마르지않을 눈물을 핥게 하고 고독의 늪에서 헤메이게 하라
그러므로써 내가 세상에 온 이유를 알게하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 가기전에 내가 누구인지 말하게 하라
껍질만을 안겨주고 챗바퀴 돌듯 반복되는 싸이클만을 안겨주는 교육과 가족주의, 기성세대에 맹공을 취하며 그로 인해 갇혀진 나를 깨고 나오라고 '껍질의 파괴'를 선동한다. 미디음의 통통거림 덕에 사운드가 비어보이던 1집에 비해 가득찬 공기로 묵직하게 누르던 2집은 달라 보일 수 밖에 없었는데(당시 신해철은 이 앨범을 60채널로 녹음했다 밝혔고, 3집을 80채널로 만들 욕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 묵직함을 만든 또 하나의 축은 앨범 내의 비주얼이었다.
넥스트의 2집이 기념비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몇가지 이유 중 하나는 전상일의 비주얼이 가세했다는 점이다. 그는 여기서 신해철의 눈매를 기본으로 넥스트의 심볼을 만들고, 새로운 로고가 당당히 박힌 검은 바탕의 부클릿을 제작했다. 그리고 그 비주얼이 데뷔반과 2집을 가르는 의미심장함을 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신해철의 악전고투도 그렇지만, 작업기간 3일에 램16MB / 하드100MB로 만들어낸 전상일의 디자인 악전고투도 고맙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전상일의 이 수훈은 다음 앨범에도, 그 이후에도 죽죽 이어진다.
신해철의 달라진 보컬도 화제였다. '후회란 말은 내겐 없는 것'이 악다구니에 가까웠다면 확실히 2집은 샤우트해졌으며, 그가 표방하려 했던 분위기(가령 메가데스의 데이브 머스테인?)와 근접해진게 사실이었다.(라이브에서 그런 면이 제대로 표현되었냐는 질문은 또다른 영역의 문제 같다) 귀환 선언의 장렬함을 2번 트랙 3부작으로 구현한 넥스트는 이어지는 3번 '이중인격자'에서 더욱 앙칼져진다.
메틀뱅어를 위한 '도시인 2.0 버전' 같은 '이중인격자'는 2번 트랙의 시도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재확인시키는 듯 했고, '쇼윈도 앞에서 구경하던 빨간 기타'를 산 소년은 청년이 되어 4번 'The dreamer'로 일관되게 발걸음을 걷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른다. 그럼에도 연인의 눈물이 못내 안스러워 지켜봐달라는 말도 잊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정규 라이브에서 신해철과 이동규가 사이좋게 '날아라 병아리'를 부를 일은 생기지 못했다. 귀환 넥스트의 첫 히트곡은 발표 당시에도 지금에도 나에겐 좀(상당히?) 시큰둥하다.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에 많지 않은 수록곡의 본작은 그 작은 공간 안에서도 산만하게 가지가 뻗는 경향이 있었다. 7번 트랙 'Life Manufacturing:생명생산'은 [존재]라는 컨셉 안에 굳이 담기보단 신해철 개인의 취향으로 간단히 넘겨버리면 될 듯 싶다. 물론 그의 개인적 독서 취향이나 상상력의 자양분이 낳은 소산으로 의미를 부여해도 될 것이고, 훗날의 [크롬스 테크노 웍스] 같은 결과물을 생각하면 어떤 계보를 그릴 수도 있을지 모른다.
사실 앨범으로 그가 표현하려던 궁극의 야심은 마지막 트랙 '불멸에 관하여'에 구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양식미를 구현한 가사와 '올드'한 방법론으로 만들어낸 '한국어 가사'의 프로그레시브 락. 놀랍게도 [핫뮤직]에서 'Collector's Item'을 연재하던 한 칼럼니스트는 당시 최근작 [존재]를 소개하며 상찬을 아끼지 않는다. 메틀 교향곡 '껍질의 파괴'로 문을 열어 대해의 프로그레시브 '불멸에 관하여'로 마무리 짓는 유효한 방법론이 아니었다면 이는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대 불멸을 꿈꾸는 자여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으라 말하는가
왜... 왜 너의 공허는 채워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처음부터 그것은 텅 빈 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물론 넥스트에 대한 상찬과 몇가지 아쉬운 점에 대한 시선은 대체로 일치하는 편이다. 넥스트는 제대로 집중화된 '컨셉 앨범'을 만들어내진 못했었다. 몇몇 곡은 분명히 튀고, 몇몇 곡은 앨범 타이틀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에서 비껴나있다. 그럼에도 [존재] 앨범이 만들어낸 성과는 놀랍다. 앨범 하나가 구입한 (팬으로서의)청자에게 주는 묵직함과 러닝 타임 속의 환상은 놀라운 것이었고, [존재] 앨범은 바로 그 '황금시대'의 첫 시작이었다.
(6)에 계속.... 다음주에 뵈요 :)
-----------------------------------------------
다운타운 출신의 김세황이 넥스트 안에서 느낀 첫 고충은 신해철과 이동규 사이의 말할 수 없는 공기였다. 아무튼 신해철은 애초에 [존재] 앨범이 '더 리턴 오브 넥스트'의 파트 1이자 나머지 1/2 또는 1/3의 여정이었다고 밝혔고, [존재] 앨범을 재녹음하고자 했었다.(그리고 파트 2는 같은 해 11월 발매를 목표로 했다고 한다) 그는 이동규와 김세황도 보컬에 참가시키고, 이수용을 코러스로 활용한다는 전략이었으나 이내 수정은 불가피해졌다.
이동규가 탙퇴한 것. 그렇다면 신해철의 선택은 하나였다. 역시나 구애의 대상이었던 비트, 하얀 그림자의 베이스 김영석을 가세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4인조의 넥스트'가 진용을 갖춘 셈이다. 파트 2는 이런저런 사정상 시간상으로 지연되고 파트 2를 염두해 둔 공식 라이브 활동을 진작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이듬해 5월의 라이브 앨범으로 결실을 거둔다.
이제 신해철과 넥스트에게 있어 당분간 악전고투는 사라진 셈이었다... 그러던 94년 10월 21일 오전, 등교생과 직장인을 태우고 가던 버스를 비롯 자가용 등 6대의 차량이 붕괴된 한강다리로 추락하는 전대미문의 사고가 발생한다. 인명피해는 사망 32명, 부상 17명.
성수대교 붕괴 사건은 이듬해 나올 넥스트의 신보에 또다른 분노를 주입하게 된다.
+ 스트러글링(0) | (1) | (2) | (3) : 무한궤도부터 솔로 2집까지.
+ 스트러글링(4) : 넥스트의 시대가 개막하다.
- 솔로 2집까지의 행보는 '시퀀스'와의 머리싸움이었다. 넥스트의 행보를 택한 것은 다시 '사람'들과의 음악 만들기를 위한 것이었다. 덕분에 넥스트 데뷔반은 시퀀스와 사람 사이의 중간, 변종 테크노 락밴드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이제 그 다음 행보로 나아갈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치가 못했다.
단기 사병 특수기동대에 근무하던 당시, 부상을 입은 그에게 "연예인이면 다냐"며 가혹한 린치를 가하던 이들과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밤길에 어렵사리 만들어낸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같은 작업물이 가져다준 피곤함은 그를 '어떤 유혹'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 사건 이후 콘솔 작동법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그에게 새로운 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입을 다시금 야무지게 물고 진행한 넥스트 2집은 그런 상황이 자아낸 악전고투가 반영되어 있다.
- 이성행씨가 작성한 넥스트 2집의 해설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째서 넥스트의 음악을 듣는가 하는 질문을 한다면 많은 대답들 중 빠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앨범이 나올 때 마다의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이라는 대답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나에게 있어 다소간 수정이 필요하다. 넥스트 2집 [Being : 존재]부터 넥스트는 비로서 '앨범이 나올 때 마다의 새로움에 대한 기대감'을 부여한 밴드로 탄생한 것이라고. 이 앨범으로 인해 본인은 이 글을 적게 된 계기를 만든 것이 아닐까. 이 앨범으로 인해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신해철의 모든 음악을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게 아닐까 한다.
- 악전고투의 상황 중 하나의 풍경을 대라면 다음과 같다. 더이상 드럼을 잡기 힘들었던 이동규가 베이스로 포지션을 옮기고 정기송이 기타를 맡은 상태로 몇몇 곡의 녹음을 시작하며, 세션을 위해 '심지어' 송골매의 드러머 이건태씨까지 모시는 상황으로 2집은 진행이 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넥스트의 미래와 합일하지 못한 정기송의 탈퇴 선언이 이뤄지고, 신해철의 김세황에 대한 '첫 프로포즈'가 시작된다. 하지만 다운타운의 일원이었던 당시 김세황은 고사의 뜻을 밝히고 다른 기타리스트를 천거하니 바로 부산 출신 메틀계의 전설이었던 프라즈마 출신의 임창수였다.(!) 그에 이어 역시나 프라즈마 출신을 거쳐 권인하 밴드 등에 활동했던 이수용까지 드럼에 가세하니 그제서야 제법 4인조의 진용을 갖췄던 셈이다.
이후 녹음은 끝나 넥스트의 새 앨범 [존재]는 94년 5월 빛을 본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임창수는 '아, 해철아. 나는 안 되겠다, 나는 제작을 해야지 지금 기타칠 때가 아니다'라는 말로 여성 3인조 에코의 앨범 제작(프로듀싱?)을 위해 탈퇴를 다시금 선언하게 된다. 김세황에 대한 신해철의 프로포즈는 그 이후에야 먹히고 만 것이다. 그때가 94년 8월이었다.

넥스트 2집 - The Return Of The N.EX.T Part 1 : The Being(94)
1. The return of N.EX.T(Instrument)
2. The Destruction of the shell:껍질의 파괴
I) Overture
II)The shell
III)The joy for the Destruction
3. 이중인격자
4. The dreamer
5. 날아라 병아리
6. 나는 남들과 다르다
7. Life Manufacturing(Instrument):생명생산
8.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
그런 의미에서 앨범 내에 들리는 임창수의 전설 같은 기타는 정말로 유물로 남은 셈이다.(그가 훗날 음향 회사에서 돈을 제법 벌었다는 소식을 들려준 것도 나름 감회였다) 예의 신해철식의 과장된 듯한 인트로 1번으로 시작하여, 이어서 들리는 2번 트랙이 안겨다 준 충격은 지금도 유효하다.
속사포 같은 랩핑과 훵키한 정기송의 기타, 전자음이 교차하던 사운드만 들려주던 넥스트는 신보의 2번 '껍질의 파괴'에서 정말이지 작정한 듯이 충격파를 먹이고 만다. 신해철은 10분 동안 스래쉬 메틀 리프와 키보드를 경쟁시키고 그 안에 '그나마 수위를 낮춘' 가사로 통렬하게 대한민국적인 시스템을 갈갈이 씹는다. 심연 같은 바닥의 음에서 드럼을 난타하는 이수용의 수훈도 높이 살만 하다. 심연을 책임지는 리듬 파트를 믿고 임창수와 신해철은 양 날개의 활강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릉거리는 기타와 대기를 울리는 전자음으로.
세상의 모든 고통과 좌절과 분노를 내게 다오
영원히 마르지않을 눈물을 핥게 하고 고독의 늪에서 헤메이게 하라
그러므로써 내가 세상에 온 이유를 알게하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 가기전에 내가 누구인지 말하게 하라
껍질만을 안겨주고 챗바퀴 돌듯 반복되는 싸이클만을 안겨주는 교육과 가족주의, 기성세대에 맹공을 취하며 그로 인해 갇혀진 나를 깨고 나오라고 '껍질의 파괴'를 선동한다. 미디음의 통통거림 덕에 사운드가 비어보이던 1집에 비해 가득찬 공기로 묵직하게 누르던 2집은 달라 보일 수 밖에 없었는데(당시 신해철은 이 앨범을 60채널로 녹음했다 밝혔고, 3집을 80채널로 만들 욕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 묵직함을 만든 또 하나의 축은 앨범 내의 비주얼이었다.
넥스트의 2집이 기념비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몇가지 이유 중 하나는 전상일의 비주얼이 가세했다는 점이다. 그는 여기서 신해철의 눈매를 기본으로 넥스트의 심볼을 만들고, 새로운 로고가 당당히 박힌 검은 바탕의 부클릿을 제작했다. 그리고 그 비주얼이 데뷔반과 2집을 가르는 의미심장함을 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신해철의 악전고투도 그렇지만, 작업기간 3일에 램16MB / 하드100MB로 만들어낸 전상일의 디자인 악전고투도 고맙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전상일의 이 수훈은 다음 앨범에도, 그 이후에도 죽죽 이어진다.
신해철의 달라진 보컬도 화제였다. '후회란 말은 내겐 없는 것'이 악다구니에 가까웠다면 확실히 2집은 샤우트해졌으며, 그가 표방하려 했던 분위기(가령 메가데스의 데이브 머스테인?)와 근접해진게 사실이었다.(라이브에서 그런 면이 제대로 표현되었냐는 질문은 또다른 영역의 문제 같다) 귀환 선언의 장렬함을 2번 트랙 3부작으로 구현한 넥스트는 이어지는 3번 '이중인격자'에서 더욱 앙칼져진다.
메틀뱅어를 위한 '도시인 2.0 버전' 같은 '이중인격자'는 2번 트랙의 시도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재확인시키는 듯 했고, '쇼윈도 앞에서 구경하던 빨간 기타'를 산 소년은 청년이 되어 4번 'The dreamer'로 일관되게 발걸음을 걷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른다. 그럼에도 연인의 눈물이 못내 안스러워 지켜봐달라는 말도 잊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정규 라이브에서 신해철과 이동규가 사이좋게 '날아라 병아리'를 부를 일은 생기지 못했다. 귀환 넥스트의 첫 히트곡은 발표 당시에도 지금에도 나에겐 좀(상당히?) 시큰둥하다.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에 많지 않은 수록곡의 본작은 그 작은 공간 안에서도 산만하게 가지가 뻗는 경향이 있었다. 7번 트랙 'Life Manufacturing:생명생산'은 [존재]라는 컨셉 안에 굳이 담기보단 신해철 개인의 취향으로 간단히 넘겨버리면 될 듯 싶다. 물론 그의 개인적 독서 취향이나 상상력의 자양분이 낳은 소산으로 의미를 부여해도 될 것이고, 훗날의 [크롬스 테크노 웍스] 같은 결과물을 생각하면 어떤 계보를 그릴 수도 있을지 모른다.
사실 앨범으로 그가 표현하려던 궁극의 야심은 마지막 트랙 '불멸에 관하여'에 구현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양식미를 구현한 가사와 '올드'한 방법론으로 만들어낸 '한국어 가사'의 프로그레시브 락. 놀랍게도 [핫뮤직]에서 'Collector's Item'을 연재하던 한 칼럼니스트는 당시 최근작 [존재]를 소개하며 상찬을 아끼지 않는다. 메틀 교향곡 '껍질의 파괴'로 문을 열어 대해의 프로그레시브 '불멸에 관하여'로 마무리 짓는 유효한 방법론이 아니었다면 이는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대 불멸을 꿈꾸는 자여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으라 말하는가
왜... 왜 너의 공허는 채워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처음부터 그것은 텅 빈 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 본 이미지는 전상일님의 싸이에서 허가를 받고 게재한 오리지널 이미지 데이타입니다. 본 이미지는 리사이즈 이외의 어떤 수정도 가하지 않았으며 전상일님의 허가 없이는 인용이 불허됩니다. 이에 양지 바랍니다.

물론 넥스트에 대한 상찬과 몇가지 아쉬운 점에 대한 시선은 대체로 일치하는 편이다. 넥스트는 제대로 집중화된 '컨셉 앨범'을 만들어내진 못했었다. 몇몇 곡은 분명히 튀고, 몇몇 곡은 앨범 타이틀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에서 비껴나있다. 그럼에도 [존재] 앨범이 만들어낸 성과는 놀랍다. 앨범 하나가 구입한 (팬으로서의)청자에게 주는 묵직함과 러닝 타임 속의 환상은 놀라운 것이었고, [존재] 앨범은 바로 그 '황금시대'의 첫 시작이었다.
(6)에 계속.... 다음주에 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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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타운 출신의 김세황이 넥스트 안에서 느낀 첫 고충은 신해철과 이동규 사이의 말할 수 없는 공기였다. 아무튼 신해철은 애초에 [존재] 앨범이 '더 리턴 오브 넥스트'의 파트 1이자 나머지 1/2 또는 1/3의 여정이었다고 밝혔고, [존재] 앨범을 재녹음하고자 했었다.(그리고 파트 2는 같은 해 11월 발매를 목표로 했다고 한다) 그는 이동규와 김세황도 보컬에 참가시키고, 이수용을 코러스로 활용한다는 전략이었으나 이내 수정은 불가피해졌다.
이동규가 탙퇴한 것. 그렇다면 신해철의 선택은 하나였다. 역시나 구애의 대상이었던 비트, 하얀 그림자의 베이스 김영석을 가세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4인조의 넥스트'가 진용을 갖춘 셈이다. 파트 2는 이런저런 사정상 시간상으로 지연되고 파트 2를 염두해 둔 공식 라이브 활동을 진작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이듬해 5월의 라이브 앨범으로 결실을 거둔다.
이제 신해철과 넥스트에게 있어 당분간 악전고투는 사라진 셈이었다... 그러던 94년 10월 21일 오전, 등교생과 직장인을 태우고 가던 버스를 비롯 자가용 등 6대의 차량이 붕괴된 한강다리로 추락하는 전대미문의 사고가 발생한다. 인명피해는 사망 32명, 부상 17명.
성수대교 붕괴 사건은 이듬해 나올 넥스트의 신보에 또다른 분노를 주입하게 된다.
# by | 2006/03/10 08:23 | └r.EX.T | 트랙백(1) | 덧글(15)















제목 : New EXperiment Team
1997년 4월 28일 경북대학교 대강당에서 [Teatime With N.EX.T] 라는 타이틀로 열린 N.EX.T 의 공연에서.. 앨범과 방송 매체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느껴왔었던.. 그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N.EX.T 의 카... ...more
다른 앨범에선 좋아하는 한두곡 대봐라하면 얼마든지 말하겠는데
존재 앨범은, 앨범 전체가 그야말로 대작"이라는..
길지않은 런닝타임이지만 그 안에 정말 그 모든것"이 다 담겨있는것 같애요.
10여년이 훌쩍 지난 과거에 나온 앨범에 견줄수 있는 작품이 미래에 과연 나올까 싶을만큼..
물론! 나오겠지만.. 헤헷^^;
최근들어 신해철의 가사들을 더 유심히 듣게되는데, 그는 날림으로 썼을지 몰라도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더 마음에 와닿는거 같아요.. 16살때보다 머리가 굳은 26세에 더 마음에 와닿는거 보면 그의 그 당시 작품들은 이젠 확실히 명반이라고 해도 될거같아요.. 시간을 견뎌낸 작품들이야말로 진정 명작들이지요..
+포스트마다 트랙백을 걸고 싶은 마음!! 학교 컴퓨터라서 그러지 못하는게 안타까워요;; 마지막 5.5집까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_+
그만큼 강력했던 앨범..
(배신의 이유는 '또' 대마초를 피웠다는 게 용납이 되지 않았어요.
10대 특유의 '비성찰에서 오는 보수성'을 지녔던 사춘기소녀에게는 말이에요.
그때는 대마초가 무슨 악인 줄 알았어요ㅎㅎ
그래서 막 '사회비판은 무슨.. 너나 잘하세요.. 가식적이야.. 흑흑' 하면서 소녀는 떠나갔던..
진짜 1년 4개월 동안 신해철에 대해 시큰둥+화남 모드로 지냈던..^^;)
순전히 음악만의 힘으로 팬의 마음을 돌려놓았던 앨범.. '존재(Being)'
그후 고루한 소녀팬의 머리를 막 유연해지게 휘저어준 존재.. '신해철'
넘흐 소중.. ^^
the ocean을 60짜리 테잎에 녹음해놓구 내내듣기두 했어요.
그거 본 친구한테 집요하다고 구박두 받았지만 정말 정말 그래야만 했다구요 ^^
우왕좌왕하고 할 이야기 미처 못하는게 제 눈에도 보이네요. 에구.
관심 가지고 지켜봐주셔서 항상 감사 :)
미스템버린양 / 그러게..구성은 산만한데 들을 때의 집중력은 참 강한 앨범이야. 묘하지....
정말 해철씨는 이 앨범을 넘는 뭔갈 하나 하고 가셔야 할텐데(어디루;)
Krom군 / 크롬군은 드리머도 안 듣는구나 ;_;) 응...당시에 눈을 끈건 부모,선생 운운 대목이었지만
요즘엔 다른게 더 눈에 띈다. 신기한 일이지....
조조군 / 관심 가지고 응원해줘 고마워>_<) 담주 안에 넥스트 해체까지 진도 나가겠지;;
서태지...이야기도 하긴 해야 하는데, 일부러 언급을 피하는 경향이 강하군요.
(좀더 어린 시절에 이런걸 적었다면 분명 뭐라고 적었을거에요;)
devi님 / 아 그러시군요. 지금 들어도 부끄럽지 않은 앨범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앨범으로 들으셔야 합니다(단호)
자전거랄라랄라님 / 읽는 제가 더 기분이 뜨거워지네요 :)
그러시군요. 저에게 [Being] 이전과 이후는 극명히 의미가 달랐어요.
-무한궤도 시절 : 중학교 봄소풍 때 애들이 틀어놓은거 들으며 좋네..라고만 여김;
-솔로 1집 : 애들이 어느게 정품이냐고 싸운 것만 기억;
-솔로 2집 : 사촌동생이 가져온거 삼촌 카스트레오로 들으며 그렘린 어쩌고 함;
-넥스트 1집 : 세계최고 동양최대~ 가사 따라하며 낄낄거림.
-넥스트 2집 : 하숙집에서 한바퀴 듣고 난뒤....그 후 몇바퀴를 더 들었죠.
진짜 정신이 멍해지는......
히로님 / 그대여...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아 :)
넘 공감;; 전, 인형의 기사(1집) - 날아라 병아리(2집) -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3집)
이 라인을 당시 무지 마음에 안들어했어요ㅎㅎ
대중들에게 너무 보드라운 발라드만 부각되는 것 같아서..;
실리지도 않았고; 아하하. 그것 참(골몰)
Sion님 / 정말 안팎으로 뭔가 합일하는 기분을 주는 멋진 앨범이었지요 ㅜ.ㅠ)
근데 해철씨가 데이브 머스테인을 표방하려했는지는 몰랐었네요. (나름 데이브 좋아했는데..라스와의 설전을 더 좋아했을지도..흐흐) 이렇게 추억의 앨범리뷰해주시니 덩달아 이런저런 생각들도 나고 참 좋구만요.
저도 정리차 하는거니까 다른 분들에게 즐거움되면 아주 좋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