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치바]


사신 치바 | 이사카 코타로 | 김소영 역

일본의 신예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들이 국내에 차곡차곡 소개되고 있다. 책을 휘두르는 연두색 색지에 '제2의 하루키' 운운하는 마케팅 문구가 있지만, 그런 민망함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피곤한 이분법을 들이댈 생각은 없지만 대중적인 화술로 순수문학층까지 설득시키는 요즘 젊은 작가군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하다.(게다가 현해탄 건너 그쪽 문학판은 우리와는 또다른 모습인 듯 하고) 게다가 [사신 치바]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NT 노벨류에 익숙한 부류들에게도 쉬이 먹힐만한 문체를 지닌 듯 하다.

이런 류의 책과는 그렇게 인연이 없는 편인데, 요즘 읽고 있는 목록 사이에 휴식 같아서 좋았었다. 어떻게 기회가 닿아 접한 책치고는 마무리도 좋았고... 그럼 책에 들어가볼까.

사신, 이른바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저승사자'라고 하겠다. 최근 만화 단행본 [데스노트]로 인해 '본의 아니게' 친숙해진 사신들. [데스노트]가 한회당 끝날때 마다 꼭 한두개의 법칙을 새기는 바람에 '게임의 규칙'에 갇힌 판국이라면, [사신 치바]의 법칙들은 간결하다. 몇가지 간단히만 설명하자면.

1. 사신은 정보부에 내려온 정보에 의거한 사람을 일주일 전에 포착한다.
2. 일주일 간 그 사람에게 접촉하여 몇가지 질문을 던지고,
3. 그에 따른 '가/부'를 정보부에 보고한다.
4. 1~3의 임무는 그렇게 성실히 임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이 만든 음악을 - 누가 만든 것이고 제목들은 일일이 몰라도 - 누구보다도 즐기며 좋아하고, 하필이면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비를 몰고 다니는, '1~3'의 임무를 비교적 성실히 이행하는 치바의 6가지 옴니버스 이야기. 이것이 [사신 치바]이다.(치바라는 이름은 다른 사신이 그렇듯 활동 영역의 지역명을 딴 것이며, 그는 아마도 치바현에서 이름을 딴 듯 하다.)

이 6개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각 스토리들이 '스토커 리포트/하드보일드/탐정소설/로맨스/로드무비/하트워밍 스토리'라는 부제를 새기며 일종의 장르 법칙 안에서 시치미 떼고 진행된다는 점이다. 스토커 리포트는 한 인간에 대한 관찰기이며, 하드보일드엔 야쿠자가 등장, 탐정소설은 [김전일]류 같은 '눈 몰아치는 바깥을 피해 모인 숙소 안의 살인사건'을 다루는 방식으로 제각각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그 안에서 작가는 재기발랄함과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소소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데, 그런 부분은 후반부 '로드무비'와 '하트워밍 스토리'에서 제법 인간성 넘치는 따스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특히나 [치바 VS 노파]라는 타이틀을 지닌 '하트워밍 스토리'에선 앞의 에피소드와 교차하는 어떤 작은 기적 같은 순간을 선사하니... 그 부분이 좋았다.

인간의 죽음을 가/부로 결정하는 직업인으로서의 무덤덤한 사신. 그런 사신이 목도하는 죽음에 대한 인간들의 태도는 제각각이다. 그저 죽고 말지부터 시작해 관조적인 인간, 죽음에 대해 찰나간도 생각해본 적 없는 행복한 인간까지. 그런 인간들에 대해 치바는 간혹 보류도 하지만 대개는 '가'를 승인하곤 한다. 그런 무던한 그에게 찾아오는 마지막의 어떤 광경은....

요즘 나오는 이런 소설류가 그렇듯,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좋은 번역(시간탓인지 몇 부분은 조금 굳은 상태로 덜컹)이니 한번쯤 서점에 만나보시는 것도 좋겠다. 이사카 코타로의 다른 소설도 궁금하네.

by 렉스 | 2006/06/08 13:16 | [집히는대로 책담 | 트랙백 | 핑백(1) | 덧글(5)

Linked at 렉시즘 : ReXism : 이.. at 2008/07/12 16:20

... 이제 정말 일을 벌리겠다는 심기일전의 자세 같은 작가, 500여 페이지 속에 그의 세계를 응축하고야 만다.전반적으로 보자면 본작은 작가의 전작들인 [사신 치바](http://trex.egloos.com/2477490)나 [피쉬스토리](http://trex.egloos.com/3259163) 보다는 [마왕](http://trex.egloos.com/2664489)에 가 ... more

Commented by 요로이시 at 2006/06/09 12:28
렌트가능??ㅋ
Commented by 렉스 at 2006/06/09 12:56
요로이시군 / 책과 음반은 절대 대여 안해줌...ㅋ
Commented by 魔神皇帝 at 2006/06/09 19:59
흐음.. 렉스님 설명을 보고 있으니 왠지 라이트노벨 계열인거 같기도 하네요. 저쪽 계통에 이런 방식이 많으니 말이지요... 한번 구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기말고사 끝나고--;;)
Commented by 요나 at 2006/06/10 10:52
오- 궁금증 증폭! 요거 함 봐야겠어요 ㅋ
Commented by 렉스 at 2006/06/10 13:56
魔神皇帝님 / 알아보니 라이트노벨 계열은 아니고 아무튼 소설판 인물은 맞는 듯 합니다.
뒤에 나온 작품들에 대한 이야길 들어보니 정치적인 소재도 있는 모양이더라구요.

요나양 / 역시 나는 영업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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