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3월 16일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선] 공개 : 최종.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선] 선정과정 및 게시방식(☜)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선] 공개 : 1주차. (☜)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선] 공개 : 2주차. (☜)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선] 공개 : 3주차. (☜)
총 한달간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0위씩 끊어서 소개되었으며, 역순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1위부터 10위까지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전 리스트 내용 다 공개하도록 하지요. 그동안 필진분들 수고하셨고, 저희들은 저희 나름대로 이 리스트에 대한 홍보에 들어갔습니다. 많은 성원 바래요 :)
저는 제 버전의 후일담을 품고 있는데 언젠가 한번 풀도록 하지요.
_ 3월 16일(금) : 음악취향Y 선정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선' (10) 1위~10위 (☜)
[하단의 리스트는 상단 링크에 걸린 공식 버전 - 즉 보도자료로 뿌려지고 앞으로도 공식으로 인정할 -의 이전 버전인 V0.8~0.9임을 주지하시길 바랍니다. 그 외에는 리스트 순위 모두 동일합니다. / 현재 정책상으로 공식 리스트 읽기엔 네이버 로그인이 필요하나 이에 대해 - 차후 대외 공개 방안 - 웹진 운영진과 협의중에 있으니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1. 어떤날 『어떤날 Ⅱ』, 킹레코드, 1989
이 작품들을 만들던 이병우와 조동익은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또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을 전해줄지, 그리고 나중의 음악인들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받고 자라나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련됨’이라는 말로는 그 깊이를 온전히 드러내기 모자란 우아함과 명징함, 그리고 재즈와 포크, 록의 언저리에서 독특하게 구현한 지극히 한국적이고 꽉 찬 퓨전 사운드. 가볍고 순간적인 의미와 감정들이 오가는 흔하디 흔한 대중가요의 한계를 극복한 곡 쓰기와 노랫말의 깊이는 듣는 이들을 흥분시키고 또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이들의 음악은 모든 이에게 동일하고 즉각적인 감정의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그렇게 기억 속에 얼마간을 잠자고 있던 이들의 음악은 문득 나의 삶 어느 한가운데에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의 순간을 만나면 다시금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오게 될지 모른다. 아름다운 멜로디, 세련된 연주, 좋은 편곡. 이 것에 부합되는 음악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감동을 세대를 건너 전해 줄 수 있는 음악이 몇이나 될 까. 「취중독백」, 「초생달」, 「그런 날에는」, 「11월 그 저녁에」는 감히 내 친구, 그리고 내 아이에게 전해 줄 수 있는 음악들이다. 음악에 순위를 부여하고픈 것이 우리의 본심은 아니다. 누가 더 잘났고, 누구의 음악이 더 중요하고 멋있는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좋은 음악은 알려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숫자를 매겨 그 중요도를 보다 힘있게 표현하고자 한다면,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을 자극시켰고 또 그들을 닮고 싶게 만들었던 이 음반이야 말로 우리의 이 힘든 작업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투째지]
2. 조용필 7집 『조용필 7집』, 지구레코드, 1985
조용필 음악의 본령이 록이었던 것은 최종적인 지향점도 록임을 암시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6집까지의 그것은 밴드의 형태로 록음악을 연주하고는 있으되, 감성의 측면에서 쉽게 동화되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물론, 그의 과거 히트 넘버에는 「단발머리」 등의 팝 스타일이 다수 존재하지만, 앨범을 아우르는 감성은 트롯에 보다 더 가까운 경향이 있다. 하지만, 7집에서는 최첨단에 해당하는 음악 조류를 누구보다도 완벽하면서도 세련되게 소화한다. 훌륭한 조력자였던 위대한 탄생은 역대 최강의 멤버 - 정원영, 김광민, 유재하, 송홍섭 등 - 로 구축되어, 앨범에 수록된 모든 싱글이 장르를 불문하고 일정 이상의 수준을 보장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곡 전반을 감도는 신디사이저가 인상적인 록 넘버 「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아시아의 불꽃」과 하드록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미지의 세계」, 「여행을 떠나요」, 그리고 당시의 최신 조류인 뉴웨이브(「프리마돈나」)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물론, 보사노바 스타일의 미디엄 넘버 「내가 어렸을 적에」, 유재하의 곡으로도 널리 알려진 「사랑하기 때문에」등 그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음악의 성찬이 어떤 것인지를 이 한 장의 앨범으로 증명해준다. 그를 논외로 하고 80년대의 대중음악을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아니 불가능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이 앨범이 존재한다. [마이너]
3. 들국화 1집 『들국화』 서라벌레코드, 1985
80년대를 조용필과 들국화의 시대라고 규정한다면 오만한 이야기일까? 사실 두 아티스트의 비교는 주류와 언더그라운드라는 대중음악 시스템에 대한 환유이다. 그리고, 이 비교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미디어라는 전달 장치 때문이었다. 경제호황과 함께 음악산업도 나날이 매출을 늘려가던 80년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의 관심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형성했다. 75년 대마초 파동 이후로 미디어는 자유로운 음악정신을 기피하는 현상을 보인다. 들국화의 신화는 미디어의 소외 속에서 형성되었다. 지하 녹음실과 열악한 소극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란 말이다. 언더그라운드의 탄생이다. 그러므로 조금 더 애틋한 애정을 가지게 된다. 순수한 음악지상주의자들에 가까웠던 들국화의 ‘행진’은 결국 많은 예술가들과 대중들에게 음악의 명징한 감동을 선사한다. 들국화의 폭발적 성공은 주류와 비주류라는 경계를 모호한 것으로 만들고야 말았고, 그렇게 들국화는 한국대중음악 ‘순수의 시대’(혹은 순수의 공간, 언더그라운드)를 대표하게 되었다. 1985년 들국화의 데뷔앨범은 당대의 가장 세련된 팝음악이며, 연주가 뛰어난 뮤지션쉽의 역량을 뽐낸 음악이었고 포크의 서정과 록음악의 파격까지 탑재한 앨범이다. 이런 다면적인 특성이 들국화로 대변되는 언더그라운드의 역량이었다. 여전히 영미 팝음악에 대한 열등감을 지울 수 없었을 때, 이 앨범이 있어서 어깨를 당당히 펼 수 있었다. 역사에 가정법은 의미 없는 상상일 뿐이지만 만약 80년대 한국대중음악이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로 구분지워지지 않았더라면, 혹은 더 거슬러 올라 75년 이 땅에서 청년문화의 자유가 거세되지 않았더라면 들국화는 진정한 슈퍼스타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역사적인 데뷔앨범을 내 놓고 부침 심한 멤버교체의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어찌되었건 이 앨범은 한국대중음악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중의 별이다. [전자인형]
4.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컴백홈』, 반도음반, 1995
서태지는 대단한 존재다. 그의 음악은 분명 팬이 아니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그는 뛰어난 음악적 능력은 물론 영리함까지 갖춘 뮤지션이었다. 1집『난 알아요』와 2집『하여가』두 장의 앨범을 통해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며 수많은 팬들을 확보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3집『발해를 꿈꾸며』부터는 대중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음악들을 발표하며 그것들을 주류로 끌어 올리는데 한 몫을 했다. - 혹자들은 시나위 시절부터 추구했던 록음악으로의 회귀라고도 표현하기도 했다. - 4집『컴백홈』은 그런 면에 있어서는 분명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3집『발해를 꿈꾸며』에서 보여준 모습도 좋았지만 보다 대중적이면서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 4집『컴백홈』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특히나 4집에서 보여준 그의 역량은 분명 동시대 다른 가수들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있었다. 「시대유감」, 「필승」등 록을 기본으로 「Come Back Home」,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같은 힙합은 물론 마지막임을 암시했던 팝적인 사운드의 「Goodbye」까지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그 어느 때보다 대단했다고 본다. 4집은 어찌보면 잡탕스러운, 하지만 그동안 그가 해온 음악들의 집합, 결정체가 아닐까 싶다. 확실히 대중적인 음악과는 거리가 먼 낯선 음악들이었지만 이런 음악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것은 서태지였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Come Back Home」의 이미지가 훗날 H.O.T와 젝스키스 같은 아이돌스타들에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시대유감」을 통해 사전심의까지 폐지시킬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컴백소식이 9시 뉴스의 메인을 장식했던 점을 봐도 그는 분명 가수 이상의 존재였다. 그가 당대 문화적 아이콘이었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편지]
5. 신중현과 엽전들 1집 『미인』, 지구, 1974 / 재발매 - 신중현 MVD, 2003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수없이 되풀이 되어 듣게 되는 한국적 록을 완성한 “신중현”, 그리고 그의 대표곡「미인」. 그 유명한 신중현의「미인」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음반이 바로 신중현과 엽전들의 첫 앨범 『미인』이다. 1974년 작품이라 믿기 힘들만큼 간결한 구조와 독특하고 세련된 멜로디로 가득한 이 음반은 강렬한 록으로 그득하다. 서구적 음악인 록으로 채워져 있지만, ‘한국 음악’이라는 생각이 음반 처음부터 끝까지 떠나지 않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록 음반이다. 저열한 녹음 상태가 내내 맘에 걸리지만 이는 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녹음 기술의 한계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음반을 폄하할 수준은 아니다. 그나마 우리가 흔히 접해온 판본, 즉 재판의 경우 기타 더빙이 시도되어 나름대로 안정적인 수준의 음질을 제공하지만, 흔히 초판이라 불리는(2003년 재발매 된 바 있다) 신중현-이남이-김호식 버전은 오버 더빙 없이 단 한 번의 녹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초판은 즉흥성과 정제되지 않은 힘에 비해 답답한 음질의 한계가 청자들에게 일종의 벽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신중현 본인은 초판에 담긴 5분에 가까운「미인」을 진정한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초판의 버전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재판의 버전에서 느껴지는 헨드릭스(Jimi Hendrix) 스타일의 리프가 좀 더 텁텁하고 신중현 식의 개성으로 버무려져 연주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버전을 듣건 엽전들의 첫 음반은 본인들은 물론이고 여타 한국의 록 밴드, 그리고 음악팬들에게 글로벌한 록과 토착화 될 가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할 계기를 던져준 ‘터닝 포인트’라는 데 있다. 이 음반이야 말로 댄스 클럽(소위 고고장)에서 춤추는 수준에 머물던 한국의 록 음악/록 음반을 실험적인 시도와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고민을 담아낼 수 있는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격상시킨 장본인이다. 비슷한 시기 등장했던 또 다른 슈퍼밴드 검은나비도 이러한 아티스트 시대의 개막에 동참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나는 너를 사랑해」,「저 여인」, 재판에만 수록된 「떠오르는 태양」의 싸이키델릭한 실험은 이 음반이 한국 록 음악 전성기의 정점이 서있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한국적 록이 완성과 동시에 박정희 정권에 의해 사라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리의 대중음악은 어떤 모양새가 되었을까 자꾸만 공상하게 만드는 절대 명반. [헤비죠]
6. 산울림 『2집』, 서라벌, 1978
산울림은 괴물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괴물이다. 산울림처럼 국내외의 어떤 족보도 통하지 않는 록 음악은 대한민국 음악사를 통틀어 오직 산울림 하나뿐이다.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삼형제는 그 어떤 기존 음악도 카피하지 않고 집구석에 처박혀 무작정 곡을 써대고 무작정 연주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레코드사를 찾아가 무작정 음반을 내달라고 했다. 그렇게 아무런 맥락도 없이 세상에 불쑥 등장한 노래가 데뷔 앨범의 「아니 벌써」와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다.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 속에서 삼형제는 얼렁뚱땅 1년도 안 되어 3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어설픈 연주와 어설픈 노래와 어설픈 레코딩으로 점철된 이 3장의 앨범은 한국의 록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결과물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두 번째 앨범은 산울림표 아마추어 사이키델리아가 가장 광범위하고 농밀하게 녹아있는 걸작이다. 중독적인 베이스 라인과 저만치 뒤에서 긁어대는 퍼즈톤의 기타 전주가 장장 3분이나 펼쳐지다가 돌연 김창완의 잠이 덜 깬 듯한 목소리가 등장하는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는 백 번이면 백 번, 들을 때마다 최상의 쾌감을 제공한다. 지구 상에 둘도 없는 능청맞은 프로그레시브록 넘버 「안개 속에 핀 꽃」, 역시 지구 상에 둘도 없을 것이 분명한 「어느 날 피었네」의 리듬워크, 구수한 타령을 몽환적 경지로 전환시킨 「떠나는 우리님」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나른한 발라드 「둘이서」와 가녀린 포크송 「기대어 잠든 아이처럼」까지 생각한다면 삼형제가 처박혀있던 작은 골방에 혹 도깨비 방망이라도 있던 건 아니었을까? [호떡바보]
7. 이문세 5집 『시를 위한 시』, 킹레코드, 1988
오동식, 신중현 등의 노래를 부를 당시의 이문세는 지금으로 치면 그저 입담 좋은 가수로 불리는게 타당하다. 게다가 그들에 의해 구축되어진 이문세의 음악적 노선은 이후와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관심의 대상일뿐 시도에 의해 격상시킬 이유는 없는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작곡:이영훈, 편곡:김명곤'이라는 체제가 확립되어진 세번째 정규 앨범 『난 아직 모르잖아요/휘파람』(1985)부터의 이문세를 말하게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단지 외견상 보편적이고 음악적 평가가 결여되기 쉬운 발라드라 해서 평가절하될 수 없고 흔히 대한민국 발라드의 완성이고 향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록적 사실이 뒷받침된 유재하의 단 한장의 정규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1987) 이전에 이문세가 존재하고 있었다는게 때때로 간과되어지고 있다는건 아쉬운 일이다. 물론 유재하의 극적인 삶이 반영된 천재적인 음악성을 두고 오늘날에 와서 재고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이문세가 이영훈을 만나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만개하고 절정에 오른 기간동안에 만들어진 음악들은 비평적으로나 감성적으로 1980년대를 대변해주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이영훈과 김명곡은 따로 또 같이 놓더라도 이미 증명되어진 대중성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평적으로도 언제든지 재발견할만한 결과물을 그 당시에 발표하였고 무엇보다 이문세의 출중한 노래 솜씨는 마찬가지로 소흘함 없이 다뤄져야한다. 이문세의 5집(1988)은 전작 『사랑이 지나가면/깊은 밤을 날아서』(1987)보다 다소 복잡한 구성과 쉽게 와닿지 않는 가사 등으로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수 있으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과 같은 성찬이 여전히 존재하는 가운데 최고 수준의 함량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아놀드]
8.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서울음반, 1987
오히려 우려되는 것은 요절로 인한 '신화화'의 기운이다. 정말 듣고서야 확인할 수 있는 본작의 투명함과 음악적 진실성이 요절이라는 거대한 그늘 아래서 가려진 것은 아닌지 매번 대하면서 체감하게 된다. 작사-작곡-편곡까지 혼자서 해낸 젊은 음악 장인의 탄생,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흔적으로써 유작의 내용물이 보여주는 성과들. 이런 본연의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 본작을 대하는 가장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발라드라는 장르가 '감히' 자신에 대한 성찰의 경지를 보여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가리워진 길」, 「지난날」등은 투명한 거울 같은 트랙들이다. 그리고 그 투명한 정서를 전달하는데 있어 유재하의 보컬색이 큰 강점이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물론 그 특유의 보컬색과 유작이라는 기정사실이 어우러져 앨범에서 비극의 기운을 운운하는 축들도 있음은 사실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그의 본작은 유재하 자신이 창출해낸 자신만의 소우주라고 칭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한 나라의 대중음악사 반 세기를 압축하는 리스트의 상위에 위치하는 것은 어떤 계보도 없이 클래식 작법을 기초로 한 고급스러운 성과물, 걸작 앨범이 가지는 미덕 중 하나인 수록곡들 간의 균형감각에 기인한다. 대중적인 호소력에 있어 「우리들의 사랑」, 「사랑하기 때문에」가 보여준 흡족함과 더불어 「그대 내품에」, 「우울한 편지」가 남기는 뒷 여운의 애상함은 그야말로 유재하라는 이름의 인상적인 문체다. 수년 후 발매된 헌정반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97)에서 음악 동지들이 밝힌 헌사는 결코 허언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렉스]
9. 015B 5집 『Big 5』, 대영AV, 1994
90년대가 배출해 낸 또 한명의 천재는 바로 정석원이었다. 서태지와 마찬가지로 정석원은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적 '아집'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전달방식은 매우 직선적이고 간결했기에 대중들의 이해범위의 바깥에 놓여 있지 않았다. 그의 작곡방식과 편곡의 형태는 매우 독특하고도 미묘한 세련미를 숨기고 있었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은 투박하고도 가벼웠는데 이는 전통적인 '대가'들의 접근법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어찌보면 그는 작가로서의 위엄에 무관심한 채 '훌륭한 음악'의 금기에 끊임없이 도전해 갔던 것이고, 그 출신성분이 불분명한 괴팍한 음악을 선보이는 015B의 태도는 평단의 엇갈린 평가를 이끌어 내곤 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한가지 사실은 정석원과 015B의 감각이 당시 대중들의 수준을 일정부분 리드하고 있었고, 이들의 새로운 사운드는 곧바로 당대의 '트렌드'로 이어져갔다는 것이다. 『Big 5』는 90년대 뉴웨이브의 선두주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던 015B가 가진 위상, 그리고 정석원의 유니크한 음악성을 확인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앨범이었다. 기계음이 범람하던 시절을 비웃듯 불쑥 내놓은「슬픈인연」의 처연한 복고주의와 「단발머리」의 넘쳐흐르는 아이디어, 「바보들의 세상」의 광기어린 테크닉은 이들의 스펙트럼과 깊이을 웅변한다. 상당부분의 작업을 개인 작업실로 끌고 내려온 시도는 몇년 후 본격화될 홈 레코딩의 흐름을 예고하고 있었으며,「아주 오래된 연인들」을 통해 하우스테크노의 원형을 제공했던 이들이 다시금 제시한 것이 무한속도경쟁이나 지루한 샘플들의 Cliché가 아닌 사운드와 녹음방식의 다변화(「그녀의 딸은 세살이에요」)와 룰을 파괴한 편곡의 독창성(「Netizen」)이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모든 것은 사운드를 통해 입증된다는 이들의 고유한 태도는 당대의 뮤지션들에게는 찾기 힘든 모습이었고, 오히려 2000년대 이후 주목을 받고 있는 인디씬의 모던록/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과 그 음악적 성향이 닮아 있었다. [투째지]
10. 노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 문화사기단/쿠조, 2000
1990년대 중반, 홍대 부근은 한참 술렁거리고 있었다. 문화에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면 손에 만져질 듯 생생한 물결이었다. 유속이 빠르고 힘차게 굽이를 치는 물결, 거기에 가만히 손을 넣고 있으면 따뜻하게 살랑거려 온 감각을 일깨웠다. 소위 ‘인디 음악’, ‘클럽 문화’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진앙지가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많은 젊음들이 그 정서를 공유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권위주의 시대를 끝내고 소비시대로 이행하던 시기, 가장 예민한 감각을 가진 청년들은 새로운 표현과 솔직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펑크라는 장르는 억압된 뚝을 허무는 가장 직설적인 도구였다. 그리고 노브레인은 그 정중앙에 위치했다. 성대가 찢어지도록 외쳐대는 괴성, 한없이 파괴적인 리듬의 연타, 단순하고 명료한 멜로디……. 마침 같은 시기 영미 록음악계에도 펑크가 재림해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그리고 어느 정도 그 흐름을 받아들인 현상이었지만), 노브레인과 그의 동지들이 이뤄놓았던 ‘조선펑크’라는 브랜드는 독특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였다. 정치적 지향에서 자유로운(그러나 기댈 이데올로기를 상실한) 세대, 무섭게 밀려드는 신자유주의 경쟁사회로 내던져진 세대, 쇼윈도우의 욕망이 체념과 좌절로 번역되기 시작한 세대……. 모던 록이 그들의 불안한 내면 풍경이었다면 펑크는 그것보다 더 불안한 외적 발현이었다. 노브레인의 정규 1집 『청년폭도맹진가』는 새로운 세대의 불안을 고스란히 기록해 놓고 있다. 그들이 예찬하는 청춘은 「성난 젊음」이고, ‘시계 불알처럼 정처 없이 왔다갔다’하는 일상의 환멸 때문에 「제발 나를」‘사정없이 난자해’ 달라고 보챈다. 그러므로 이 펑크 키드들은 세상과 난투전을 벌여야 했다. 그들에게 난투전은 곧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한 슬픈 싸움이었다. -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음악적인 부분이다. 펑크는 연주보다 태도가 우선시 되는 음악으로 생각되는 면이 있는데 이 앨범은 그렇지 않다. 특히 블루스의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진 리듬 기타의 도발은 태도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명반으로 치켜세우게 된다. [전자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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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날 『어떤날 Ⅱ』, 킹레코드, 1989
이 작품들을 만들던 이병우와 조동익은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또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을 전해줄지, 그리고 나중의 음악인들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받고 자라나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련됨’이라는 말로는 그 깊이를 온전히 드러내기 모자란 우아함과 명징함, 그리고 재즈와 포크, 록의 언저리에서 독특하게 구현한 지극히 한국적이고 꽉 찬 퓨전 사운드. 가볍고 순간적인 의미와 감정들이 오가는 흔하디 흔한 대중가요의 한계를 극복한 곡 쓰기와 노랫말의 깊이는 듣는 이들을 흥분시키고 또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이들의 음악은 모든 이에게 동일하고 즉각적인 감정의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그렇게 기억 속에 얼마간을 잠자고 있던 이들의 음악은 문득 나의 삶 어느 한가운데에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의 순간을 만나면 다시금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오게 될지 모른다. 아름다운 멜로디, 세련된 연주, 좋은 편곡. 이 것에 부합되는 음악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감동을 세대를 건너 전해 줄 수 있는 음악이 몇이나 될 까. 「취중독백」, 「초생달」, 「그런 날에는」, 「11월 그 저녁에」는 감히 내 친구, 그리고 내 아이에게 전해 줄 수 있는 음악들이다. 음악에 순위를 부여하고픈 것이 우리의 본심은 아니다. 누가 더 잘났고, 누구의 음악이 더 중요하고 멋있는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좋은 음악은 알려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숫자를 매겨 그 중요도를 보다 힘있게 표현하고자 한다면,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을 자극시켰고 또 그들을 닮고 싶게 만들었던 이 음반이야 말로 우리의 이 힘든 작업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투째지]
2. 조용필 7집 『조용필 7집』, 지구레코드, 1985
조용필 음악의 본령이 록이었던 것은 최종적인 지향점도 록임을 암시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6집까지의 그것은 밴드의 형태로 록음악을 연주하고는 있으되, 감성의 측면에서 쉽게 동화되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물론, 그의 과거 히트 넘버에는 「단발머리」 등의 팝 스타일이 다수 존재하지만, 앨범을 아우르는 감성은 트롯에 보다 더 가까운 경향이 있다. 하지만, 7집에서는 최첨단에 해당하는 음악 조류를 누구보다도 완벽하면서도 세련되게 소화한다. 훌륭한 조력자였던 위대한 탄생은 역대 최강의 멤버 - 정원영, 김광민, 유재하, 송홍섭 등 - 로 구축되어, 앨범에 수록된 모든 싱글이 장르를 불문하고 일정 이상의 수준을 보장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곡 전반을 감도는 신디사이저가 인상적인 록 넘버 「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아시아의 불꽃」과 하드록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미지의 세계」, 「여행을 떠나요」, 그리고 당시의 최신 조류인 뉴웨이브(「프리마돈나」)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물론, 보사노바 스타일의 미디엄 넘버 「내가 어렸을 적에」, 유재하의 곡으로도 널리 알려진 「사랑하기 때문에」등 그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음악의 성찬이 어떤 것인지를 이 한 장의 앨범으로 증명해준다. 그를 논외로 하고 80년대의 대중음악을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아니 불가능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이 앨범이 존재한다. [마이너]
3. 들국화 1집 『들국화』 서라벌레코드, 1985
80년대를 조용필과 들국화의 시대라고 규정한다면 오만한 이야기일까? 사실 두 아티스트의 비교는 주류와 언더그라운드라는 대중음악 시스템에 대한 환유이다. 그리고, 이 비교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미디어라는 전달 장치 때문이었다. 경제호황과 함께 음악산업도 나날이 매출을 늘려가던 80년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의 관심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형성했다. 75년 대마초 파동 이후로 미디어는 자유로운 음악정신을 기피하는 현상을 보인다. 들국화의 신화는 미디어의 소외 속에서 형성되었다. 지하 녹음실과 열악한 소극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란 말이다. 언더그라운드의 탄생이다. 그러므로 조금 더 애틋한 애정을 가지게 된다. 순수한 음악지상주의자들에 가까웠던 들국화의 ‘행진’은 결국 많은 예술가들과 대중들에게 음악의 명징한 감동을 선사한다. 들국화의 폭발적 성공은 주류와 비주류라는 경계를 모호한 것으로 만들고야 말았고, 그렇게 들국화는 한국대중음악 ‘순수의 시대’(혹은 순수의 공간, 언더그라운드)를 대표하게 되었다. 1985년 들국화의 데뷔앨범은 당대의 가장 세련된 팝음악이며, 연주가 뛰어난 뮤지션쉽의 역량을 뽐낸 음악이었고 포크의 서정과 록음악의 파격까지 탑재한 앨범이다. 이런 다면적인 특성이 들국화로 대변되는 언더그라운드의 역량이었다. 여전히 영미 팝음악에 대한 열등감을 지울 수 없었을 때, 이 앨범이 있어서 어깨를 당당히 펼 수 있었다. 역사에 가정법은 의미 없는 상상일 뿐이지만 만약 80년대 한국대중음악이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로 구분지워지지 않았더라면, 혹은 더 거슬러 올라 75년 이 땅에서 청년문화의 자유가 거세되지 않았더라면 들국화는 진정한 슈퍼스타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역사적인 데뷔앨범을 내 놓고 부침 심한 멤버교체의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어찌되었건 이 앨범은 한국대중음악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중의 별이다. [전자인형]
4.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컴백홈』, 반도음반, 1995
서태지는 대단한 존재다. 그의 음악은 분명 팬이 아니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그는 뛰어난 음악적 능력은 물론 영리함까지 갖춘 뮤지션이었다. 1집『난 알아요』와 2집『하여가』두 장의 앨범을 통해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며 수많은 팬들을 확보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3집『발해를 꿈꾸며』부터는 대중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음악들을 발표하며 그것들을 주류로 끌어 올리는데 한 몫을 했다. - 혹자들은 시나위 시절부터 추구했던 록음악으로의 회귀라고도 표현하기도 했다. - 4집『컴백홈』은 그런 면에 있어서는 분명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3집『발해를 꿈꾸며』에서 보여준 모습도 좋았지만 보다 대중적이면서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 4집『컴백홈』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특히나 4집에서 보여준 그의 역량은 분명 동시대 다른 가수들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있었다. 「시대유감」, 「필승」등 록을 기본으로 「Come Back Home」,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같은 힙합은 물론 마지막임을 암시했던 팝적인 사운드의 「Goodbye」까지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그 어느 때보다 대단했다고 본다. 4집은 어찌보면 잡탕스러운, 하지만 그동안 그가 해온 음악들의 집합, 결정체가 아닐까 싶다. 확실히 대중적인 음악과는 거리가 먼 낯선 음악들이었지만 이런 음악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것은 서태지였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Come Back Home」의 이미지가 훗날 H.O.T와 젝스키스 같은 아이돌스타들에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시대유감」을 통해 사전심의까지 폐지시킬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컴백소식이 9시 뉴스의 메인을 장식했던 점을 봐도 그는 분명 가수 이상의 존재였다. 그가 당대 문화적 아이콘이었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편지]
5. 신중현과 엽전들 1집 『미인』, 지구, 1974 / 재발매 - 신중현 MVD, 2003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수없이 되풀이 되어 듣게 되는 한국적 록을 완성한 “신중현”, 그리고 그의 대표곡「미인」. 그 유명한 신중현의「미인」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음반이 바로 신중현과 엽전들의 첫 앨범 『미인』이다. 1974년 작품이라 믿기 힘들만큼 간결한 구조와 독특하고 세련된 멜로디로 가득한 이 음반은 강렬한 록으로 그득하다. 서구적 음악인 록으로 채워져 있지만, ‘한국 음악’이라는 생각이 음반 처음부터 끝까지 떠나지 않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록 음반이다. 저열한 녹음 상태가 내내 맘에 걸리지만 이는 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녹음 기술의 한계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음반을 폄하할 수준은 아니다. 그나마 우리가 흔히 접해온 판본, 즉 재판의 경우 기타 더빙이 시도되어 나름대로 안정적인 수준의 음질을 제공하지만, 흔히 초판이라 불리는(2003년 재발매 된 바 있다) 신중현-이남이-김호식 버전은 오버 더빙 없이 단 한 번의 녹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초판은 즉흥성과 정제되지 않은 힘에 비해 답답한 음질의 한계가 청자들에게 일종의 벽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신중현 본인은 초판에 담긴 5분에 가까운「미인」을 진정한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초판의 버전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재판의 버전에서 느껴지는 헨드릭스(Jimi Hendrix) 스타일의 리프가 좀 더 텁텁하고 신중현 식의 개성으로 버무려져 연주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버전을 듣건 엽전들의 첫 음반은 본인들은 물론이고 여타 한국의 록 밴드, 그리고 음악팬들에게 글로벌한 록과 토착화 될 가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할 계기를 던져준 ‘터닝 포인트’라는 데 있다. 이 음반이야 말로 댄스 클럽(소위 고고장)에서 춤추는 수준에 머물던 한국의 록 음악/록 음반을 실험적인 시도와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고민을 담아낼 수 있는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격상시킨 장본인이다. 비슷한 시기 등장했던 또 다른 슈퍼밴드 검은나비도 이러한 아티스트 시대의 개막에 동참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나는 너를 사랑해」,「저 여인」, 재판에만 수록된 「떠오르는 태양」의 싸이키델릭한 실험은 이 음반이 한국 록 음악 전성기의 정점이 서있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한국적 록이 완성과 동시에 박정희 정권에 의해 사라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리의 대중음악은 어떤 모양새가 되었을까 자꾸만 공상하게 만드는 절대 명반. [헤비죠]
6. 산울림 『2집』, 서라벌, 1978
산울림은 괴물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괴물이다. 산울림처럼 국내외의 어떤 족보도 통하지 않는 록 음악은 대한민국 음악사를 통틀어 오직 산울림 하나뿐이다.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삼형제는 그 어떤 기존 음악도 카피하지 않고 집구석에 처박혀 무작정 곡을 써대고 무작정 연주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레코드사를 찾아가 무작정 음반을 내달라고 했다. 그렇게 아무런 맥락도 없이 세상에 불쑥 등장한 노래가 데뷔 앨범의 「아니 벌써」와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다.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 속에서 삼형제는 얼렁뚱땅 1년도 안 되어 3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어설픈 연주와 어설픈 노래와 어설픈 레코딩으로 점철된 이 3장의 앨범은 한국의 록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결과물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두 번째 앨범은 산울림표 아마추어 사이키델리아가 가장 광범위하고 농밀하게 녹아있는 걸작이다. 중독적인 베이스 라인과 저만치 뒤에서 긁어대는 퍼즈톤의 기타 전주가 장장 3분이나 펼쳐지다가 돌연 김창완의 잠이 덜 깬 듯한 목소리가 등장하는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는 백 번이면 백 번, 들을 때마다 최상의 쾌감을 제공한다. 지구 상에 둘도 없는 능청맞은 프로그레시브록 넘버 「안개 속에 핀 꽃」, 역시 지구 상에 둘도 없을 것이 분명한 「어느 날 피었네」의 리듬워크, 구수한 타령을 몽환적 경지로 전환시킨 「떠나는 우리님」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나른한 발라드 「둘이서」와 가녀린 포크송 「기대어 잠든 아이처럼」까지 생각한다면 삼형제가 처박혀있던 작은 골방에 혹 도깨비 방망이라도 있던 건 아니었을까? [호떡바보]
7. 이문세 5집 『시를 위한 시』, 킹레코드, 1988
오동식, 신중현 등의 노래를 부를 당시의 이문세는 지금으로 치면 그저 입담 좋은 가수로 불리는게 타당하다. 게다가 그들에 의해 구축되어진 이문세의 음악적 노선은 이후와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관심의 대상일뿐 시도에 의해 격상시킬 이유는 없는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작곡:이영훈, 편곡:김명곤'이라는 체제가 확립되어진 세번째 정규 앨범 『난 아직 모르잖아요/휘파람』(1985)부터의 이문세를 말하게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단지 외견상 보편적이고 음악적 평가가 결여되기 쉬운 발라드라 해서 평가절하될 수 없고 흔히 대한민국 발라드의 완성이고 향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록적 사실이 뒷받침된 유재하의 단 한장의 정규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1987) 이전에 이문세가 존재하고 있었다는게 때때로 간과되어지고 있다는건 아쉬운 일이다. 물론 유재하의 극적인 삶이 반영된 천재적인 음악성을 두고 오늘날에 와서 재고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이문세가 이영훈을 만나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만개하고 절정에 오른 기간동안에 만들어진 음악들은 비평적으로나 감성적으로 1980년대를 대변해주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이영훈과 김명곡은 따로 또 같이 놓더라도 이미 증명되어진 대중성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평적으로도 언제든지 재발견할만한 결과물을 그 당시에 발표하였고 무엇보다 이문세의 출중한 노래 솜씨는 마찬가지로 소흘함 없이 다뤄져야한다. 이문세의 5집(1988)은 전작 『사랑이 지나가면/깊은 밤을 날아서』(1987)보다 다소 복잡한 구성과 쉽게 와닿지 않는 가사 등으로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수 있으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과 같은 성찬이 여전히 존재하는 가운데 최고 수준의 함량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아놀드]
8.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서울음반, 1987
오히려 우려되는 것은 요절로 인한 '신화화'의 기운이다. 정말 듣고서야 확인할 수 있는 본작의 투명함과 음악적 진실성이 요절이라는 거대한 그늘 아래서 가려진 것은 아닌지 매번 대하면서 체감하게 된다. 작사-작곡-편곡까지 혼자서 해낸 젊은 음악 장인의 탄생,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흔적으로써 유작의 내용물이 보여주는 성과들. 이런 본연의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 본작을 대하는 가장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발라드라는 장르가 '감히' 자신에 대한 성찰의 경지를 보여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가리워진 길」, 「지난날」등은 투명한 거울 같은 트랙들이다. 그리고 그 투명한 정서를 전달하는데 있어 유재하의 보컬색이 큰 강점이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물론 그 특유의 보컬색과 유작이라는 기정사실이 어우러져 앨범에서 비극의 기운을 운운하는 축들도 있음은 사실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그의 본작은 유재하 자신이 창출해낸 자신만의 소우주라고 칭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한 나라의 대중음악사 반 세기를 압축하는 리스트의 상위에 위치하는 것은 어떤 계보도 없이 클래식 작법을 기초로 한 고급스러운 성과물, 걸작 앨범이 가지는 미덕 중 하나인 수록곡들 간의 균형감각에 기인한다. 대중적인 호소력에 있어 「우리들의 사랑」, 「사랑하기 때문에」가 보여준 흡족함과 더불어 「그대 내품에」, 「우울한 편지」가 남기는 뒷 여운의 애상함은 그야말로 유재하라는 이름의 인상적인 문체다. 수년 후 발매된 헌정반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97)에서 음악 동지들이 밝힌 헌사는 결코 허언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렉스]
9. 015B 5집 『Big 5』, 대영AV, 1994
90년대가 배출해 낸 또 한명의 천재는 바로 정석원이었다. 서태지와 마찬가지로 정석원은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적 '아집'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전달방식은 매우 직선적이고 간결했기에 대중들의 이해범위의 바깥에 놓여 있지 않았다. 그의 작곡방식과 편곡의 형태는 매우 독특하고도 미묘한 세련미를 숨기고 있었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은 투박하고도 가벼웠는데 이는 전통적인 '대가'들의 접근법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어찌보면 그는 작가로서의 위엄에 무관심한 채 '훌륭한 음악'의 금기에 끊임없이 도전해 갔던 것이고, 그 출신성분이 불분명한 괴팍한 음악을 선보이는 015B의 태도는 평단의 엇갈린 평가를 이끌어 내곤 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한가지 사실은 정석원과 015B의 감각이 당시 대중들의 수준을 일정부분 리드하고 있었고, 이들의 새로운 사운드는 곧바로 당대의 '트렌드'로 이어져갔다는 것이다. 『Big 5』는 90년대 뉴웨이브의 선두주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던 015B가 가진 위상, 그리고 정석원의 유니크한 음악성을 확인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앨범이었다. 기계음이 범람하던 시절을 비웃듯 불쑥 내놓은「슬픈인연」의 처연한 복고주의와 「단발머리」의 넘쳐흐르는 아이디어, 「바보들의 세상」의 광기어린 테크닉은 이들의 스펙트럼과 깊이을 웅변한다. 상당부분의 작업을 개인 작업실로 끌고 내려온 시도는 몇년 후 본격화될 홈 레코딩의 흐름을 예고하고 있었으며,「아주 오래된 연인들」을 통해 하우스테크노의 원형을 제공했던 이들이 다시금 제시한 것이 무한속도경쟁이나 지루한 샘플들의 Cliché가 아닌 사운드와 녹음방식의 다변화(「그녀의 딸은 세살이에요」)와 룰을 파괴한 편곡의 독창성(「Netizen」)이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모든 것은 사운드를 통해 입증된다는 이들의 고유한 태도는 당대의 뮤지션들에게는 찾기 힘든 모습이었고, 오히려 2000년대 이후 주목을 받고 있는 인디씬의 모던록/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과 그 음악적 성향이 닮아 있었다. [투째지]
10. 노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 문화사기단/쿠조, 2000
1990년대 중반, 홍대 부근은 한참 술렁거리고 있었다. 문화에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면 손에 만져질 듯 생생한 물결이었다. 유속이 빠르고 힘차게 굽이를 치는 물결, 거기에 가만히 손을 넣고 있으면 따뜻하게 살랑거려 온 감각을 일깨웠다. 소위 ‘인디 음악’, ‘클럽 문화’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진앙지가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많은 젊음들이 그 정서를 공유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권위주의 시대를 끝내고 소비시대로 이행하던 시기, 가장 예민한 감각을 가진 청년들은 새로운 표현과 솔직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펑크라는 장르는 억압된 뚝을 허무는 가장 직설적인 도구였다. 그리고 노브레인은 그 정중앙에 위치했다. 성대가 찢어지도록 외쳐대는 괴성, 한없이 파괴적인 리듬의 연타, 단순하고 명료한 멜로디……. 마침 같은 시기 영미 록음악계에도 펑크가 재림해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그리고 어느 정도 그 흐름을 받아들인 현상이었지만), 노브레인과 그의 동지들이 이뤄놓았던 ‘조선펑크’라는 브랜드는 독특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였다. 정치적 지향에서 자유로운(그러나 기댈 이데올로기를 상실한) 세대, 무섭게 밀려드는 신자유주의 경쟁사회로 내던져진 세대, 쇼윈도우의 욕망이 체념과 좌절로 번역되기 시작한 세대……. 모던 록이 그들의 불안한 내면 풍경이었다면 펑크는 그것보다 더 불안한 외적 발현이었다. 노브레인의 정규 1집 『청년폭도맹진가』는 새로운 세대의 불안을 고스란히 기록해 놓고 있다. 그들이 예찬하는 청춘은 「성난 젊음」이고, ‘시계 불알처럼 정처 없이 왔다갔다’하는 일상의 환멸 때문에 「제발 나를」‘사정없이 난자해’ 달라고 보챈다. 그러므로 이 펑크 키드들은 세상과 난투전을 벌여야 했다. 그들에게 난투전은 곧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한 슬픈 싸움이었다. -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음악적인 부분이다. 펑크는 연주보다 태도가 우선시 되는 음악으로 생각되는 면이 있는데 이 앨범은 그렇지 않다. 특히 블루스의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진 리듬 기타의 도발은 태도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명반으로 치켜세우게 된다. [전자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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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7/03/16 09:03 | └rex in 음악취향Y | 트랙백(2) | 핑백(1) | 덧글(23)















제목 : 2007년 3월 16일 이오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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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건 1판이군요. 자료실에 있던것말고(무슨 소린지 아시죠?) 올라갈때는 살짝 글들이 수정되었는데. 1위는 말할것도 없구요 ^^
개인적으로 명반 100선 즐겁고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단행본으로라도 나왔으면 좋겠네요. 렉스님 수고하셨습니다. ^^
구비해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히 드는데...
이문세 5집은 요원하네요. ㅠㅠ
6집이나 3집은 예상했지만, 5집은 생각도 못했어요.
음반수집가님이 2개나(!) 앨범이 없다는 게 놀랍습니다. ^^
하지만 들어볼 수 있는 것이 몇개 없다는 건....
어떤날 2집은 인근 레코드가게에서 본 적이 있으니
총알 모이면 집으러 가야겠습니다.
어떤날 앨범 저도 갖고 있거든요. 어렵게 구했는데 정말 좋아서 자주 꺼내듣곤 해요.
두 장 다 있는데 적어주신 앨범을 쪼금 더 좋아합니다^^;;;
산울림은 다 좋아서, 특별히 어떤 게 쪼금 더 좋다고 말하긴 어렵지만요.
전 창완 아저씨의 독집앨범이 정말 좋아요. 정말 어렵게 구해서 들었는데 무척 와닿는 노래가 많았어요.
어제오늘 음반에 관한 좋은 글이 공감에 보여서 좋아요. ^^
덕분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군요. 짝짝짝!
오늘 아침 이문세에서 소개가 되었을때 제 일처럼 기쁘더군요 ㅎㅎ
요즘 티비에 '이문세'씨 자주 나오는데.
뭐- 노래를 불렀다하면. 명곡뿐이니 ㅋㅋㅋ
꿈의대화님 / 안 그래도 대상 앨범에 대한 놀라움은 꿈의대화님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
투째지님 / 버전 문제라고 살짝 글에 수정을 흐;
음반수집가님 /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쥴님 / 좀 강렬하셨죠?;
marlowe님 / 음악 이야기하는 친구에게 리스트 보여주니 1위가 낯설다고 하더군요. 흐.
Krom군 / 본의 아니게 이젠 내내 씹히는 그 서브의 리스트;;
바스티스 / 동해물과 백두산이~
히치하이커님 / 저도 그 앨범 제일 좋아합니다><)
하늘빛마야님 / 레어군요@@)
일레갈님 /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계기라...저도 기분이 좋네요^^)
초하류님 / 뭔가 외우기 쉽죠;
viperwine님 / 정제되지 않고 가능성을 잔뜩 안은!
크리티커님 / 10위에 올라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ㅜㅜ)
몽중인님 / 그리고 지금은 아이비 뮤비로 표절 감독으로 등극!(....)
윤사장님 / 정말 90년대는 '대단'했죠! 음악으로 자신의 한 시대가 추억되고 분기가 갈리는 것도 참 묘한 인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피리님 / 그 앨범을 가지고 계시다니...정말 부럽군요 ㅜㅜ)
산울림 같은 밴드는 정말 선정하면서도 앨범을 하나 꼽는다는 자체가 참 힘들고 어찌보면 무의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자체가 음악사의 기적 같은게 아닌가 하고....
devi님 / 이문세씨 본인은 자신의 순위에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
요나양 / 그럴줄 알았지=_=; ㅎㅎ
뮤비가 좋기도 있지만 뮤비를 통해서 "노래" 를 들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거였어요 :p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노래를 들다보면 그 시절이 떠오르고,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노래가 더 살갑게 다가오는 거 말예요. "옛 것" 을 떠올리면 좋았든 그렇지 않았든간에 우선 그리움이란 단어가 떠오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