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밀양역에서 굳이 버스나 택시를 타지 않아도 걸음으로 도달할 수 있는 큰댁 부근의 가곡동, 그 생생한 풍경이 주는 익숙함. 그곳에서 '바람난 남편에게 버림받은 주제에' '그 남편의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굳이 돈 벌자고 온 것은 아니고' '괜히 남의 옷가게 인테리어가 어떻다고 충고랍시고 한 여자가' '땅 살 돈 운운 하며 있는 체를 하다' 어떤 일로 인해 완전히 무너진다.

막연하게 쳐다보던 낮은 도시 위의 드넓은 하늘과 일상에 새어드는 햇살을 보고 그저 저것은 하늘이다, 그저 저것은 햇살일 뿐이다라고 한 여자는 어느 순간 자신의 머리를 짚은 손길에 마음을 의탁하게 되지만...

그 이후부터 그녀에게 하늘은 그저 하늘이 아닌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질문과 의식적인 존재감이 되고, 봉합되었던 줄 알았던 감정의 균열이 다시금 자잘이 쪼개지는 순간부터 그 하늘에 대한 신뢰감은 '거짓말이야~'의 반복되는 선율에...

급기야 태초에 인간이 와삭 깨물었다는 '사과'를 조각조각 삼키던 그녀가 할 수 있는 항변의 최대치는 확 터지고, 용서도 없고 구원도 없고 화해도 없는 낮은 자리의 인간들이 밟는 누추한 대지엔 그저 햇살이 오늘도 새어들 뿐이다. 가위질만 서걱서걱.


+ [오아시스]보단 견딜만했고, 나의 영화는 아직 [박하사탕]이다.

by 렉스 | 2007/05/25 14:43 | [집히는대로 영화담 | 트랙백(3) | 핑백(1) | 덧글(8)

Tracked from lunamoth 4th at 2007/05/25 16:40

제목 : 밀양
김형, 하느님 믿기를 그만둔 사람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이가 체스터튼이었던가요? 언젠가 형이 말했던 얘기 아직 기억해요. 용서니 구원이니 하는 귀띔의 허상을요. 씻기지 않은 상처를 헤집는 가벼운 면죄부의 그림자를요. 아직 5월은 다 가지 않았고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어요. 나자레를 헤매던 이의 잃어버린 시간은 그 누구도 찾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구원과 희망으로 받아들여야 한......more

Tracked from Sion, In The.. at 2007/05/25 22:49

제목 : 밀양
오늘 메가박스에서 TTL 시네마로 보고 왔습니다. 역시나 단상 나열로 정리하자면 -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자기만 알 수 있는, 자기만 보살펴 주는 비밀의 햇살 밀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 좀 더 부연하자면 나를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같은 환타지 역시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종찬(송강호)도 말했다. "밀양이 어떤 곳이냐고예?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다 아임니꺼" - 만약 그래도 ......more

Tracked from 딸기밭은 영원히! at 2007/06/02 01:22

제목 : 밀양, Secret Sunshine / 이창동, 2..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하늘이 스크린을 비추며 영화가 시작됩니다. 신애(전도연)는 남편을 사고로 잃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 아들과 함께 내려오는 길입니다. 그리고 신애가 종찬(송강호)에게 읇조리는 듯 이야기하는 '밀양'의 뜻, '비밀의 햇볕' 은 내내 영화를 관통하며 내리쬡니다. 신애가 가진 아픔은 결국 종교로 치유될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그녀가 얻었다고 이야기하는 마음의 평화는 보이지 않는 그 빛안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more

Linked at 렉시즘 : ReXism : 2.. at 2007/12/27 16:42

... com/3148118 / http://trex.egloos.com/3160092: 베놈 탄생을 10분 당겼거나, 베놈을 죽이지 않았어야 했다.- 밀양 : http://trex.egloos.com/3192730: [똥개]에서는 '밀양'이 안 느껴졌는데, 여기선 정말 '밀양'이 느껴졌다. 아무튼 [오아시스] 보다 한결 견디기 쉬운 영화라서 고마웠던.- 시간을 달리 ... more

Commented by 욜렛 at 2007/05/25 16:09
다 사람들 문제이지요.
구원과 용서라는 화두도 사람이 던지는 게 아니던가요..

이래놓고 일요일 아침 교회만 가면 엎어져서 왜 우는걸까요^^;;;;;;;;;;;
Commented by nano at 2007/05/25 17:32
저는 이 영화를 견딜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내리기 전에 볼 수 있을까요.
Commented by Sion at 2007/05/25 22:49
저 역시 박하사탕이...-_-)b
Commented by 히치하이커 at 2007/05/26 09:28
음...칸 프리미엄이 붙어서 당장 내릴 것 같진 않지만...불안불안합니다. 원래 이걸 보고 싶었는데, 여자친구 성화에 해적들을 봤거든요. 쩝...
Commented at 2007/05/26 19:3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렉스 at 2007/05/28 10:29
욜렛양 / 울어줄 대상과 일이 있응게;;

나노님 / 견딜 수 있을건 같지 않은데 내리기 전에 볼 수 있을지라는 고민은 정말 힘들군요;

Sion님 / 박하사탕이=_=)b

히치하이커님 / 여친분이 성화면 당연히 그쪽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은 섭리;

비공개님 / 으하. 역시 무지해요.
Commented by 세이지 at 2007/05/29 23:12
머리가 길어지고 덥수룩하게 느껴지면
자를수있다는게..
가위질만 서걱서걱-
아 왠지 깔끔한 아저씨 후기.ㅎㅎ 저도 지금 막 보고들어왔어요^^
Commented by 렉스 at 2007/05/30 10:55
세이지양 / 잘 보고 왔느뇨><) 서걱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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