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 [4집](87)
01 사랑이 지나가면
02 밤이 머무는 곳에
03 이별이야기
04 그대 나를 보면
05 가을이 오면
06 깊은밤을 날아서
07 슬픈미소
08 굿바이
09 그녀의 웃음소리뿐
10 어허야 둥기둥기(건전가요)
최초로 구매한 앨범은 바비 브라운의 테이프였지만, 실은 개인적으로 소유한 - 정확히 말하자면 사촌 누나 집에서 허락없이 들고 온 - 테이프는 이문세 4집이었다.
87년 여름이었던가 겨울이었던가. [2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에서 방학을 맞이해 차트 시리즈를 했었다. TV방송계와 달리 라디오, 특히 이 프로그램에선 이문세가 최고의 남자 가수, 최고의 가수 등으로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었다. 이종환의 공개 방송에서 입담을 펼치던 이택림과 이문세 등을 통해 그의 존재감이 흐릿하게나마 각인은 되었지만 막상 노래를 집중해서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런, 당시 '국민'학교 6학년 남학생의 팔엔 소름이 좍 돋고야 말았다. 흔해 빠진 시중의 발라드(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고, 그냥 노래)로 시작했던 노래는 일순 갑자기 거대한 합창의 구조로 이어졌고 그 순간은 쉬이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노래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만 'M B C'라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3시 57분여를 알렸다.
그때부터 집착(?)은 시작되었다. 녹음 테이프를 집어넣은 오디오테크에서 항상 라디오에 집중하며, 이문세라는 이름 석자가 나오길 기다리며 나올라치면 바로 녹음 버튼을 누르는 나날들. 그러나 각 라디오 프로그램은 대곡(?) '그녀의 웃음소리뿐'의 재생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하릴없이 정수라의 '환희'와 조용필의 '모나리자'를 테이프에 채우는 것에 만족했어야 했고, 이문세의 다른 노래들 '사랑이 지나가면', '굿바이'가 여백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큰집 사촌누나방에서 발견한 - [스크린]지와 [리더스 다이제스트] 등의 볼거리가 가득했던 내 유년의 방학 아지트 - 이문세 4집의 끝자락에 '그녀의 웃음소리뿐'을 발견한 것이다! 하긴 당시에 이게 '4집'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그냥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삽입된 이문세의 앨범이라는 발견 뿐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내 주머니 안엔 그 테이프가 있었다. 그렇게 듣기 시작한 '내 소유(?)'의 첫 앨범이 이문세 4집이었다. 닳도록 듣고 싶은 곡을 반복해서 들었고, 그냥 가만히 처음부터 끝까지 앨범을 들었다. 이렇게 내 최초의 앨범은 내 인생 최고의 앨범이라는 첫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곡도 버릴 곡이 없는 앨범'이라는 개념을 심어주었고 - 훗날 들은 변진섭 1집이 그랬고, [더티 댄싱] 사운드트랙이 그랬다 - 이문세가 내 최고의 가수가 되었다.
어느새 88년 중학생이었던 나는 조악하게 (어디서 따왔는지도 모를)녹음 테이프엔 담은 이문세 5집과 함께 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이 노래들이 이영훈이라는 사람의 작품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문세의 목소리와 호소력 외에도 든든한 뒷받침이 되는 이영훈이라는 사람도 참 대단하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난 평생 이 사람의 얼굴조차도 모르고 대단한 사람이구나라는 깨달음만 가지게 살겠다 이런 부질없는 생각도 하곤 그랬다.
음반을 사모은다는 개념이 아직도 자리잡지 못한 나이대여서 - 비슷한 시기에 급우들은 이미 헬로윈의 앨범을 사듣고 돌리곤 했다 - 그저 오랫동안 이문세의 노래만 듣고 살겠다 싶었다. 이런 애착은 싱겁게도 '돈을 주고 구입한 최초의 이문세 앨범'인 6집으로 인해 꺾이고 말았다. 4집과 5집이 선사한 감동적인 순간순간들과 달리 왜 '장군의 동상'인지,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의 씩씩함은 왜 그리도 이질적이었는지 의문이 풀리기도 전에 나는 그렇게 연을 접고 말았다.
달리 말하자면 4집, 5집에 대한 애착은 그때도 그랬고, (물론 조금 희석 되었지만)지금도 크다. 그 당시의 이문세와 이영훈이 낳은 곡들이 선사한 기적 덕에 아마도 난 지금 이렇게 웹에서 음반을 듣고 끄적일 수 있는 여러 공간에서 온갖 소회들을 늘여놓는 것이리라. 그들은 수줍은 표현이나마 '내 첫사랑'이었고, 음악이 사람의 감정을 조율할 수 있음을 가려쳐준 '그 분야의 선생님'들이었다.
지금은 어느새 나이가 먹어버렸고, 다른 것들에 신경쓰며 사느라 잊혀지려 한 이름이었지만... 그 선생님 중 한분이 다른 세상으로 가셨다. 그동안의 어떤 무심함에 대해서 작은 죄책감이 들었고, 그래도 간간히 꺼내듣는 여전한 그가 만든 음악의 목록들이 더욱 소중히 여겨졌다. 그러나 한 음객의 죽음이라는 슬픈 사실, 그 명료함은 어찌하겠는가. 그 엄연한 사실에 나는 명복을 빌 뿐이다.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 당신이 선사한 고마움을 어떻게 보답의 표현을...




덧글
다이고로 2008/02/16 12:04 # 삭제
잘 읽었습니다...스크린...이랑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정말 오래만에 읽어보는 글자(..) 입니다..ㅋㅋ
누나가 있는 친구집에 가면 늘 있었던 스크린~~
아...이말을 할려고 한게 아닌데;;; 아무튼 아쉽습니다...
암없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곡을 많이 만들고 계시겠죠?
렉스 2008/02/16 13:29 #
다이고로님 / 옛날 옛적에 러시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연주 앨범 살걸 그랬어요. 에휴;
버섯돌이 2008/02/16 16:50 #
가신게 정말 너무 아쉬운.. ㅠ_ㅠ
렉스 2008/02/17 20:35 #
버섯돌이님 /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