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낫 데어] 생경한 즐거움들.

토드 헤인즈의 [벨벳 골드마인]은 대학 시절 봤었다. 그때부터 기미가 보이긴 했지만, 실존인물들의 이야기를 현란한 픽션 화면과 바삭 마른 다큐풍의 화면으로 교차하는 수법은 그릉대는 음악과 어우러져 좋은 기억을 심어줬었다. 좀 어지럽고 과시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 나온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이라는 만발로 뻗은 가지의 탄탄한 고목을 대상으로 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좀더 성실하고 차분하고 능숙한 어른의 자세로 인물을 다루고 있다.

밥 딜런의 음반 한장 제대로 없는 이 얼치기 관객은 6개의 조각 인격과 1개의 목소리(크리스 크리스토퍼슨)으로 나눠진 이 대상에 대한 생경함으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어쩌면 그런 것도 나쁘지는 않았을지 모르겠다. 낯선 세계를 탐방하는 여행자는 길을 헤매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하며 벤치에 앉아 한적한 시공간 유영을 즐긴다.

자신을 랭보라고 칭하는, 시인의 자아를 지닌 젊은 아이콘은 헐렁하고 음침한 댄디즘으로 딜런의 자아를 대변한다.(벤 위쇼) 잭 롤린스라는 이름을 지닌 포크 스타는 꾸부정한 자세와 얼굴에 확연히 잡힌 음곽으로 외로운 자아를 보여준다. 이윽고 그는 종교에 귀의하며, 목가풍의 노래를 부며 목울대를 울리고...(크리스천 베일) 잭 롤린스의 이야길 하는 줄리언 무어는 분명 존 바에즈의 모델을 하였을텐데, 정색을 한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질감이란!
영화는 또 하나의 껍데기를 두른다. 잭 롤린스의 이야길 연기하는 헐리우드 스타 로비 클락은 불꽃 같은 연애 초기의 열정으로 중반부의 균열을 이미 예고하고,(히스 레저) 중반부의 균열을 감내해야 하는 로비 클락의 여인 샬롯 갱스부르를 보는 반가움이란 또다른 작은 탄식을 낳는다. 저 배우가 이제 주부 역할을 해야 할 나이가 되었단 말인가! 이런 즐거움에도 불구하고 사실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가 좀 붕 떠 있고, 히스 레저가 그냥 히스 레저풍의 연기를 한다고 피곤한 눈자위를 누르며 속으로 투덜대고 있었는데...
이런 불평을 종식시키는 것은 역시나 일렉 기타 사운드로 기존의 포크팬들을 경악케만든 쥬드 퀸의 영국행이었다.(케이트 블랑쉐) 연신 담배를 물며 장르론에 가두려는 언론과 평론가의 입담에 조소하는 껑충한 키의 미국 스타. 비틀즈 애들(!)과 잔디에서 노닥거리고 뒹굴고, 종내엔 영화의 인상을 각인시키는 미묘한 미소의 마무리까지, 수훈갑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영화를 곱씹게 하는 것은 노구의 빌리 더 키드가 보여주는 쓸쓸함과 소외의 감각이다.(리차드 기어) 일종의 원점 회귀처럼 빌리 더 키드는 '흑인' 우디 거스리(마커스 칼 프랭클린)가 그랬듯이 화물 열차에 몸을 싣고, 잡히지 않는 한 노장의 육신과 정신을 작게 웅변한다.
영화의 크레딧이 종료될 때까지 자리를 붙잡게 하는 두장의 사운드트랙이 발휘하는 힘은 일종의 보너스가 아닐까.

by 렉스 | 2008/06/03 11:54 | [집히는대로 영화담 | 트랙백(2)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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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알트아이젠 at 2008/06/03 12:18
밥 딜런에 대해서는 몰라도 포스터의 포스와 본좌급 배우분들때문에 기대하고 있어도,청주에서는 절대 해줄영화가 아니라서 절망하고 있죠. 근처 천안에서는 하는곳이 있다고는 하지만 기말고사기간이라서 어떻게 될지...ㅜ.ㅜ
Commented by 렉스 at 2008/06/04 11:41
앗 어느새 6월이군요. 벌써 시험기간이군요. 허허;;
Commented by Kafesaurus at 2008/06/03 13:37
올해 놓친 영화 중 하나 입니다. 보고 싶어요.
Commented by 렉스 at 2008/06/04 11:41
에구 바쁘다보면 어쩔수 없이 놓치는게 많은 듯 합니다.
Commented by 밥 달라 at 2008/06/03 14:36
Kafesaurus님.. <아임 낫 데어>가 아직 개봉 2주차도 안됐는데 놓치지 마세요... 극장에서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가로로 긴...16:9 화면이라고요...
Commented by 렉스 at 2008/06/03 17:32
저 분은 해외에 계신 분입니다.
Commented by 미리내 at 2008/06/03 21:56
개봉일에 시네큐브에서 봤는데 '비틀즈 애들' 나올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웃지 않아서 실망했었..(응?) 사실 줄리안 무어가 나오는 건 모르고 갔는데 정말 반가웠고.. 동행인도 평소답지 않게(!!) 영화를 재미있게 봐서 참 좋았어요 :)

특히 쥬드 퀸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흑백이라는 특징도 있지만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이미지들이 많아서 더 마음에 들었답니다.
Commented by 렉스 at 2008/06/04 11:43
비틀즈 애들 부분은 아예 대사로 집어주는데도 모르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게다가 여성팬들이 꺄악~하면서 한번 더 집어주는데도...하하 OTL;;

줄리언 무어는 정말 인터뷰하듯이 연기하더군요. 차분하게 차분하게 멋졌어요.

쥬드 퀸 부분은 사실 계속 '남장여자'라는 상기가 되곤 했는데, 결국은 설득 시키더군요.
케이트 괴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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