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세상에 뭐 이런 물건이 다 있나. 나 이거 참.

고든 청장의 목소리를 타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막연한 도로로 그는 질주한다. 그 막막함은 [터미네이터2]의 마지막을 상기시킨다. 이 자경단원은 누구의 따스한 손길로도 위로받지 못한 채, 경찰봉과 개들의 추격을 피하며 그의 막다른 소신을 실천할 것이다. 그리고 검은 바탕 화면에 나오는 타이틀 폰트와 박수소리. 가슴이 벅차고 시큰하다. 세상에 뭐 이런 물건이 다 있나. 나 이거 참. 동행자는 눈물 닦는거 들킬새라 고개 숙이고, 엔딩 크레딧까지 자리를 지킨 이들은 서너번 박수를 더 친다. 먼저 자리를 비운 이들과 남은 이들 모두 블럭버스터 하나 보러 왔는데 [양들의 침묵]의 공포와 무게를 느끼고 돌아간다. 무섭고 몸서리처진다. 히어로물 주제에 [조디악]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미국영화의 진화라는 현란한 광경을 보여준다.

히어로물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가. 06년 리차드 도너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슈퍼맨2] 감독판 재편집으로 자신의 세계를 뒤늦게 복권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워너는 무슨 생각으로 당시 [비틀쥬스]의 초짜 팀 버튼을 기용하여 기를 쓰고 배트맨을 극장판으로 내세울 생각을 했을까. 코믹스 같은거 아랑곳 않던 그와 대니 엘프먼은 도대체 뭘 믿고 [배트맨 리턴즈]의 앞과 뒤를 펭귄의 탄생과 죽음으로 비장하게 수놓았던 것일까.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대중들은 호황으로 답한 이유는 뭘까. 그러나 생각보다 히어로물의 전성기는 좀더 늦어졌다. 조엘 슈마허가 참담하게 말아먹은 배트맨의 연대기는 거두고 싶은 역사가 되었고, 먹고 살기 힘들었던 마블사는 [퍼니셔]고 [캡틴 아메리카]고 싸구려 극장판이 되는걸 지켜 볼 수 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매니아들의 성전인 [스폰]도 엉망진창 극장판으로 화답했다.

아마도 이 모든 영광의 시작은 마블의 [스파이더맨]을 사들인 소니와 샘 레이미, 그리고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로 인해 가능했을 것이다. 책임감과 사회라는 공기를 머금은 스파이더맨과 돌연변이 X세대들의 이야기는 각각 2편에서 정점을 발휘했고, 지금에 와선 더이상 멍청한 극장판이 나오는 것을 좌시하지 않는 마블이 직접 [아이언맨]과 [인크레더블 헐크]를 호쾌하게 지휘하기 시작했다. 물론 DC와 워너도 가만 있지 않았다. [슈퍼맨 VS 배트맨] 같은 아이고 이런 싶은 프로젝트부터 그럴싸했던 [배트맨 : 원년]까지 하나하나 물거품 되더니만 기어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는 하나의 포석을 마련했던 것이다. 히어로물 극장판의 유구한 역사는 '어쩌면 성사되었을지도 모를' 팀 버튼/니콜라스 케이지의 '슈퍼맨 프로젝트'나 제임스 카메론의 '스파이더맨 프로젝트'같은 물거품 프로젝트부터 [캣우먼], [고스트 라이더] 같은 - 차라리 애초에 만들지나 말지 싶은 - 되돌리고픈 치욕까지 모두 품고 있다.(물론 판단 유보의 [데어 데블], [일렉트라], [판타스틱4-2] 같은 녀석들도 포함한 방만한 역사다)

그러던 것이 결국 [다크 나이트] 같은 마스터피스까지 낳고야 만 것이다. 이제 비로서야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때. 나는 키보드를 멈추고 고민한다. 이걸 도대체 이야길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팀 버튼 시대부터 다시 시작하느냐, 다크 나이트로 글이고 그림이고 한바탕 신나게 푸느냐, 이 무거운 무게감에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면 그냥 포기하느냐... 이런 묘한 흥분감에 있는 와중이다. 어떻게든 풀어내봐야 하지 않겠나 싶다. 게다가...
내일은 이 녀석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OTL;;; 아무튼 내일 키보드에 손을 올리면 뭔가 할 수 있겠지.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들순이와 나의 그림체를 단골들은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허허. 본의 아니게 두 명이 된 조커. 그건 그렇고 아이러니한게 [다크 나이트]를 최고봉으로 만든 원천 중 하나가 바로 '9.11 그 이후'라는 징후 덕이라는건 참 가슴 아픈 대목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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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렉스 | 2008/08/07 21:47 | [집히는대로 영화담 | 트랙백(4) | 핑백(2)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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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13월의 혁명자 로오나.. at 2008/08/07 23:36

제목 : 배트맨이 아니고 아이언맨이었다면? 다크나이트 스포일..
지금 당장 처음부터 끝까지 리뷰를 쓸 기력이 없어서 나중에 쓰겠습니다. 그 전에 요약식으로 감상을 늘어놓아야겠는데... 그 전에, 오늘 아이맥스관에서 조조상영으로 관람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좌석이 꽉 찼는데도 불구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그 자리를 지배하고 있었고, 다 끝난 후에는 절반 이상의 관객이 남아서 스텝롤을 보며 박수를 치는 진기한 현상에 동참할 수 있어서 매우 행복했어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분들께 행운이 있기를. ......more

Tracked from Dark Knight .. at 2008/08/07 23:58

제목 : 기대의 저편, 다크 나이트
음악이든 미술이든 영화든, 살다보면 가끔 말문이 막히는 작품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최근의 영화에 있어서라면 작년 이맘때 국내 개봉한 "폭력의 역사"가 그러했군요. 그리고 어제 본, 아마도 평생 기억에 남을 이것이 또 그러했습니다. 액션 영화나 수퍼 히어로물의 공식에 익숙하고, 그 공식에 충실함을 원하셨던 분께는 조금 낯설지도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감격스러웠......more

Tracked from 경계하는 경계인 at 2008/08/08 00:43

제목 : 다크 나이트 / 조커를 위한 영화
에서 돈도 많은 주제에 불타는 정의감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사이에서 폼잡으며 고민하던 브루스 웨인을 보며 "Why so serious?"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원래 슈퍼히어로물을 잘 보지 않기 때문에 에 대한 기대 또한 거의 없었다. 하지만 광대 가면을 쓴 일당들이 빌딩에서 뛰어내려 은행을 터는 첫 씬에서 돈을 더 갖기 위해서 서로 죽이다가 마지막에 남은 조커가 가면을 벗으며 스쿨버스를 몰고 사라지는 순간 이 영화가.....more

Tracked from 샐리의 오두막 at 2008/08/08 00:00

제목 : 다크 나이트 - 굉장한 것을 보았다
'굉장하다'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군요....ㅇ_ㅇ 배트맨 비긴즈를 그냥 그렇게 봤던 터라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갔었는데, 이걸 찍기 위해서 비긴즈편이 필요했던 거라면, 그것도 기꺼이 인정해줄만큼 광활한 마음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괴물(freak)은 감독이었습니다....... 괴물이에요 괴물...괴물 괴물..........할말없음 (넙죽 orz)...more

Linked at 렉시즘 : ReXism : [.. at 2008/08/09 21:11

... 했던 [배트맨 비긴즈](05)는 물론이거니와 지금까지의 히어로물을 훨씬 뛰어넘는 회심의 역작이다. 이 시간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단 말인가.(참조 링크 : http://trex.egloos.com/3856165) 크리스토퍼 놀란이 그려내는 DC 코믹스 기원의 고담 시티는 [배트맨 리턴즈](팀 버튼 감독/92)의 (단 한번도 낮 장면이 없다는) 고담 시티와 달리 ... more

Linked at 렉시즘 : ReXism : [.. at 2008/10/15 13:56

... 긴즈]를 다시 본 것도 도움이 된 듯 하다. 이렇게 이어서 보니 참...웨인도, 알프레드도, 폭스도, 고든도, 전 서장님도, 허수아비도, 레이첼도, 아 정말 뭉클하다. 뭐 이런 시리즈가 다 있어. 나 원 참.+ 한편 들순이의 감상 그림이 업데이트 되었다. ㅜㅜ);;;; ... more

Commented by 공공의적 at 2008/08/07 21:59
그야말로 개작살. 무엇부터 이야기 하던지 개작살. 어느 부분부터 들어가던지 개작살. 결론은 개작살 입니다.
Commented by 렉스 at 2008/08/08 23:07
보는 사람을 아주 납작하게 만드는 영화더군요. 흐하
Commented by 제로나이트 at 2008/08/07 22:35
내일 아이맥스 예약해버렸습니다.
월E도 빨리 봐야할텐데 말이죠...
Commented by 렉스 at 2008/08/08 23:07
역시 아이맥스로 봐줘야 합니다><)
Commented by 미리내 at 2008/08/07 22:37
아..렉스님. 저도 제목에 있는 저 문장을 거의 그대로 중얼거리면서 나왔어요 "세상에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 ㅠㅠ
Commented by 렉스 at 2008/08/08 23:08
벅차고도 아득하고 갑갑합니다 ㅜㅜ)
Commented by glasmoon at 2008/08/07 23:25
비슷한 뉘앙스네요. 저는 나서면서 뱉은 말이 '살다보니 참 이런 영화를 다...;' 였습니다. -_-;
Commented by 렉스 at 2008/08/08 23:08
아버지가 아들놈 손목 한짝 자르는 수준의 암담함을 넘더군요. 흐하
Commented by 샐리 at 2008/08/07 23:34
저는 '굉장하다...'라는 말만 중얼거리면서 나왔다지요. 전 아마 말로 된 감상문을 못 쓸 것 같습니다;; (그림 한장으로 때웠다는;;)
Commented by 렉스 at 2008/08/08 23:09
저도 책임 회피하고 싶을 정도로 그냥 가슴 안에서 품고 싶습니다 ㅜㅜ) 그건 그거대로 막막한 일이지만 흐
Commented by 로오나 at 2008/08/07 23:35
그렇습니다. 히어로물은 마침내 여기까지 왔습니다. 스파이더맨2를 보고 전율하면서, 과연 10년내로 이걸 뛰어넘을 수 없는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했는데... 어쩔 수 없이, 헐리웃은 최고에요.
Commented by 렉스 at 2008/08/08 23:10
정말 다른 범주로 스파이더맨2과는 또다른 영역을 만들더군요.
사운드트랙 사야겠습니다.
Commented at 2008/08/08 07:5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렉스 at 2008/08/08 09:29
어이쿠 죄송해요 ㅜㅜ)
스팸 트랙백 단속을 위한 설정 이후 간간히 몇몇 블로거분들이 불편을 겪고 계셔요.
제가 매일 단위로 엉뚱하게 스팸 처리된 트랙백을 다시 복원합니다만...
아예 공지로 걸까도 걱정일 정도로, 이웃분들에게 죄송함을 느낍니다;

에구. 아무튼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다이고로 at 2008/08/08 09:20

호평도 이렇게 많은 호평을 받은 블록버스터도 참 처음 보는군요..
저는 이번주 일요일날 보러갑니다...
아이맥스는 뭐 항시 매진이더군요;;;

Commented by 렉스 at 2008/08/08 23:10
이제 슬슬 일방적인 호평을 넘어선 비판들도 나오더군요.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흐
Commented by hkmade at 2008/08/08 09:34
와이프와 얘기하면서 지금까지 흥행에 실패했던 배트맨이 이번에는 흥행에 성공할까?라며 의구심이 들더군요. (하긴 지금까지 제 이글루 지인들의 평가가 좋았던 영화는 항상 흥행에 성공했었습니다만..) 꾸벅졸면서 지금까지 배트맨 시리즈를 봐왔지만 4-50년 이상 미국인의 사고방식속에 진화를 거듭해왔던 배트맨을 몇편의 영화로..(솔직히 전 좀 지루하더라구요. ㅎㅎ) 관객을 흡입하기에는 좀 역부족이라는 생각이..(스타워즈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번시리즈는 어느정도 흥행을 할듯 싶네요.
Commented by 렉스 at 2008/08/08 23:11
이번주는 호조 분위기지만 역시 입소문 타고 "열나 꿀꿀해"로 인지되고
하강세일 듯 해요. 볼 수 있을때 봐놓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흐
Commented by 사이동생 at 2008/08/08 14:30
어제는 다크 히어로가 가지는 마케팅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방금 바로 옆에서 다크나이트는 시간떼우기다 -놈놈놈이 더 낫더라-라는 의견을 개진받은 찰나 이런 글을 보는군요.
참고삼아 스파이더맨에서 진짜 영웅은 해리입니다. 어흑. 불쌍한 해리. __b
Commented by 렉스 at 2008/08/08 23:12
전 해리를 '계승에 실패한 악당'이라고 생각합니다. 흐.
원체 3편을 '어정쩡의 극단'이라고 생각해서요.
Commented by 블랙 at 2008/08/09 16:31
다크 나이트의 유일한 단점은 너무 완벽하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다크 나이트를 넘어서는 영화가 나올수 있을런지?
Commented by 렉스 at 2008/08/09 21:41
놀란 감독 자신이 3편을 맡아도 부담일 것이고,
다른 감독이 받아도 이만저만 부담이 아닐텐데...말이죠.

워너 운영진이 이 시리즈를 가만히 놔둘리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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