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13일
이승환 [KARMA] : 계란 완숙

02 ) 물어 본다
03 ) 나무꾼의 노래
04 ) Happy wedding song
05 ) 마지막 인사
06 ) I envy you
07 ) 연애박사
08 ) Karma
09 ) Quiz show
10 ) 하찮은 사랑
11 ) 변종
12 ) Notorious
13 ) 시련은 끝난다.
걸작 [HUMAN] 이래로 이승환의 앨범은 그 자신의 음악적 경향의 대립항, 그 팽팽한 긴장감이었습니다. 대중들을 만족시키는 유연한 멜로디의 발라드와 앙칼진 보컬로 청자들의 맥박수를 뛰게 만드는 락적인 트랙이 교차하는 양상은 아예 [EGG] 앨범에서 앨범의 사이드를 두장으로 나누는 시도로 이어졌습니다.
[HUMAN] 앨범의 '너의 나라'로 이승환 자신의 음악 이력을 전.후로 완전히 획을 그어버린 후 그는 음악적으로 뭔가 자유로워진 양상이었습니다. 이어진 앨범 [Cycle]의 라디오 에어플레이용 곡은 사랑과 이별의 번민을 다룬 곡이 아닌 '가족'이었으며, '천일동안'이라는 전무후무한 히트곡 자체의 분위기를 뒤집는 듯한 '백일동안'의 방방 뛰는 활력은 어떤 강박관념의 탈피를 느낄수 있게끔 하였죠.
이 앨범에서 대중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이승환을 충족시켜주는 곡은 '애원' 정도이며, '흡혈귀'나 '사자왕' 같은 노래에서 드러나는 동시대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감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꽤나 흥미롭습니다. 오히려 '그대는 모릅니다'와 '당부'가 실린 [The War In Life] 앨범이 오리엔탈리즘에 기댄 퇴행적 시도라고 생각될만치...
[EGG]는 그런 복잡한 양상을 아주 작정을 하고 한데 묶었습니다. 첫번째 디스크 [sunny side-up]이 동그란 계란 노란자 반숙의 윤기 같은 사이드라면, 두번째 디스크 [over easy]는 바삭하게 익혀진 퍽퍽한 느낌의 사이드였습니다. 언제나 이항 대립의 모습을 보여주는 음악적 관심사를 포괄적으로 담기 위한 더블 앨범이라는 시도는 언젠가는 나올 태세였으며, 막상 나와보니 보다 많은 세대와 보다 많은 장르들을 담기 위한 시도가 돋보인 앨범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양함 속에서도 흐트러지는 청자들의 집중력은 어쩔수 없었으며, 별도로 한장의 앨범으로 나온 [sunny side-up] 보다 매니아들을 위한 [over easy]의 스트레이트한 트랙들이 더욱 설득력이 넘치는 모습이었죠. 꽤나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의 이력을 믿어준 오랜 음악팬을 위한 2시간 넘는 선물의 의미에 가까웠던 셈입니다.
음악 이력의 결산물로 나온 셈인 [Serious Day]은 어쩌면 [EGG]의 모자란 성취감을 채우기 위한 작품일지도 모를 일이죠. 아무튼 그 이후 여전히 열정적인 라이브로 이력을 채워가던 그에게 앨범의 성취도보다 더욱 의미 깊은 일들은 아마도 결혼이라는 중대사와 첫 라이브 DVD 발매였겠죠? 그런 상황들 이후의 첫 앨범이라는 사실이 [KARMA]를 돋보이게 만듭니다. 때론 유난스러웠던 대규모 자본의 투자는 이제 음반시장 불황이라는 현실적 벽 앞에서 꼭 필요한 트랙만 선별해서 녹음해야 하는 한계상황을 긍정해야 하는 단계까지 오게 되고...
총 런닝타임이 56분 남짓한 본작은 듣고 난뒤에 "앗 어느새?"라는 혼잣말을 자연 낳게 합니다. 그만큼 한장의 앨범으로서의 각 곡간의 유기성과 밀도가 제법 높아졌습니다. 곡 전반적으로 풍부한 화음과 보컬의 운용에 신경을 쓴 부분이 역력하며(5번 트랙 'I envy you'는 아예 아카펠라풍의 노래입니다), 굳이 별도의 타이틀을 걸지는 않았지만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서로 대립하는 전형적인 이승환의 앨범입니다.
'물어 본다'에서 드러나오는 삶의 긍정적 성찰은 이승환 음악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트랙입니다. 'Happy wedding song'의 가사는 유치하지만 그만큼 진심을 담고 있구요.(그의 노래가 아니라면 용서하기도 힘들었지도 모릅니다 :-> ) '마지막 인사'는 괜시리 김동률을 떠올리게 만드는 발라드입니다.
전반부가 마무리 되면 'Karma'로 포문을 여는 셈인데, 어떤 한계를 넘나들려던 전작의 시도들보다 후반부 트랙들이 굉장히 안정적으로 들리는 것은 이 앨범 자체가 스스로 명확한 한계선을 인지하고 그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숱한 트랙들 중에서 선별한 곡들을 담을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엄선하고 녹음하는 사이에 실험 보다는 안전선을 지킨 것은 아닌지? 'Karma'의 후반부 코러스가 전작의 '나의 영웅'처럼 극적으로까지 들리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Quiz show'는 조롱조의 현실비판에도 불구하고 위악적이진 않습니다. 지누의 작곡 덕에 롤러코스터 분위기가 묻어나온 '변종'과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Notorious' 같은 트랙에서도 이승환 특유의 재기발랄함 보다는 사운드의 완숙함이 더욱 상기됩니다.
이제(어느새!) 마흔에 접어든 이 뮤지션의 여덟번째 앨범은 전작과 연관해서 '계란 완숙'을 떠올립니다. 갓 껍질을 깨고 반숙으로 익히고 뒤집었던 계란 요리를 연상케하던 전작의 실험의 미숙함에 비해 확실히 숙성한 면모와 잘 익은 계란 노란자의 핵이 내재한 완성도 말이죠.
그러나 또 반면에 계란 완숙은 텁텁함을 주기도 합니다. 유연함 보다는 완결성을 위해 다소 고착화된 모습으로 만들어진 신보가 탐탁찮은 매니아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핵을 익히기 위한 밀집력은 좋지만 이 앨범으로 새로운 이승환의 면모를 발견할 수는 없을겁니다. 그 대신 한 뮤지션의 고집스러운 완벽주의에 대한 작은 예우를 표할 순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을 저는 긍정합니다.
# by | 2004/10/13 18:01 | └post_HUMAN | 트랙백 | 덧글(12)















예전 처럼 확연히 갈라선 대립구도도 아니고..
조금은 완화되어진 기분이 든다고 할까요..
렉스님처럼 뭔가 깊이있게 파고들지는 못하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것이 있네요 ^^;;
해피 웨딩송은 유치한데 좋던걸요.. ^^
아직은 조금더 집중해서 들어봐야겠어요
말하는 것도 그렇고 예전의 뾰족함들이 많이 없어졌더라구요.
음반도 그 영향을 받아서 전보다는 약간 차분한...
전에는 러닝타임 74분 꽉 채우더니 요번엔 1시간도 안되어서 서운한... 뭐. 혁신적이진 않아도 그냥 하나의 좋은 앨범.
전 밤에 불끄고 듣다가 변종의 그루브에 깜짝 놀랬지요.
지누, 롤러코스터의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그러고 보니 이승환 관련 포스트에만 덧글을 남기게 되네요..ㅋㅋ
남봐완님의 빠른 완쾌를 바라며~~
반응이 엇갈리는 편이라 어찌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5집이랑 비슷했으면 하는 망상을...--;
좋다고 하더군요 :) 이승환이 아니고선 표현하기 힘든 사랑
찬가겠죠. 즐겁게 듣자구요+_+
내미님 / 신해철씨도 장가가고 나니 사람이 참 성질이 많이
죽었습니다(...) 자주 삐지지도 않고, 그냥 삭힐줄도 알고(...)
사람 다 됐습니다(;;;;;;;)
아무튼 간만의 신보라 좋죠? 좋은 나날 되시길!
크리티커님 / 솔직히 말하자면 확실히 5집 분위기는 아닙니다.
에그 앨범의 두장을 한장의 엑기스로 압축한 분위기랄까...
초하류님 / 아마 그 곡이 심장병이었겠죠?
그런의미에서는 썸업이지만..
제가 기대가 너무 큰 것인가요ㅠ_ㅠ
궁금하더군요. 기분 참 나빴습니다...으휴;
레이첼님 / 좀더 스트레이트하고 락킹한 것을 원했던 마음 이해합니다 :)
가짜집시님 / 전 제목만 보고 '시련은 끝난다'가 뭔가 해주길 바랬습니다...만, 구슬픈 발라드였더군요^-^ 좀더 큰 방점을 하나 후반부에 찍어도 좋았을거라는 생각은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