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과 사상]과 나 [집히는대로 책담

+ 뉴스 : [여적] 강준만 '퇴출'(경향신문)

[인물과 사상]을 안 것은 복학 후 첫 겨울방학 때였다.
구효서, 박상우, 윤대녕, 성석제, 간혹 한강, 간혹 김영하 등을
뒤적이던 시립도서관의 열람 목록에서 우연찮게 집어든
[인물과 사상]의 어떤 권은 나에겐 전혀 새로운 세상이었다.

조선일보, 서울대, 남성주의에 입각한 침묵의 카르텔,
수구 우파 멘탈리티, 고린내 나는 엄숙주의에 반기를 든
용감한 문장으로 가득한 강준만의 문체는 아무 것도 모르고
살아온 나에게 새로움이었으며, 어떤 - 괘씸하게도 - 대리만족이었다.


실명 비판이라는 용감한 창은 조갑제, 김대중(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논단 기고자들, 숱한 졸렬한 펜들에게 공격을 가했으며, 그에
대한 논쟁과 논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강준만은 솔직했다. 그는 최진실의 매력에 대해 한명의 팬으로서
애정가득한 분석서를 작성했으며, 같은 노선이라 믿어온 이에 대한
솔직한 서운함을 도무지 숨기지 않았다. 이 책으로 인해 이름을 알게된
김규항과 진중권, 김정란, 고종석 등 그 소중한 이름의 가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강준만은 또한 징그러울 정도로 왕성한 필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비정기적으로 발간하던 이 시리즈와 더불어 동시에 월간 형태의 저널,
그리고 [문학 권력], [한국 현대사 산책], [사람들은 왜 분노를 잃었을까]
등 숱한 리스트들은 안팎으로 [인물과 사상]의 논조와 겹치곤 했다.

그토록 왕성함에도, 은근히 지지자들이 많다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강준만의 저작 활동에 윤택함을 줬다는 이야긴 들은 적이 없었다.


[인물과 사상]은 이미 보도되었다시피 - 난 이제서야 알았지만 - 33권을
끝으로 그 행보가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강단에서의 본업에 충실하겠다는
뒷 이야기를 들었다. 실명 비판과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지식 사회의
의미있는 족적으로 의당 평가되어야 할 그의 이력도 다소 힘없는 지금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셈이다.


33권은 특집으로 [인터넷 시대의 글쓰기]에 대한 질문으로
우회적으로 그가 이 행보를 멈출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를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쓰고 나서 읽어봐도 꽤나 무덤덤한 내 문체와는 별개로
이 사실이 난 참 허전하고...



슬프다. 정말 고백컨대 그에게 진 빚이 한둘이 아님을 말해둔다.
그의 책으로 인해 참 많은걸 배웠는데(배운 모양새치고는 이건 참 아니라고
보지만서도) 한동안 사보기를 멈췄던 - 어느샌가 말이지 - 그의 저작 활동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 사실이 참 미안하고 그렇다.

학생 시절 [인물과 사상]을 후배들에게 권하며 이 사람 강의 한번
듣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 기억이 새삼스럽다.(김윤식 교수 다음으로
가장 강의를 듣고 싶은 다른 대학 교수였던 셈인가...)


그가 이뤄냈던 여태까지의 노정이 빛바래지 않길 기원한다.


강준만 교수님, 감사합니다.


덧글

  • ozzyz 2005/01/24 19:38 #

    김규항씨의 우려대로 설사 좌파가 '패션'이 되었더라도, 강준만에 의해 진실을 목격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는 '내'가 단 한사람이라도 생겼다면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강준만과 그의 작업을 사랑합니다.

    글 잘보고 갑니다 ^^
  • Tanzwut 2005/01/24 22:54 #

    이분의 글은 몹시 비약이 심한듯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한국정치에 있어서는 가장 적합한 글이였음에는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이래저래 유감스러운 일인듯 합니다.
  • ridly 2005/01/25 00:09 # 삭제

    한때, 그의 지나친 편향주의적 시각을 싫어하던때도 있었지....지금 생각하면....나도 참 모자르고 철이 없었던....
  • 글곰 2005/01/25 01:55 #

    그가 시도한 실명비판을 저는 정말 공감하고 존경합니다.
    그의 말대로, 견고한 침묵의 카르텔을 깨는 데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테니까요
    대신 그 자신이 감내해야 할 것들이 무척 많았었지요...
  • 렉스 2005/01/25 09:59 #

    ozzyz님 / 평소 ozzyz님 글을 몇몇 훔쳐본 저로선 되려 고마운 말씀입니다.

    Tanzwut님 / 논리의 비약이라기보단 심정의 비약 같은 대목이 많았죠.
    딴지일보 초기 연재분의 '깡'준만 거사의 똥침 찌르기는 이제 막을
    내리는건가요. 아쉽군요.

    리들리군 / 되돌아보니 이렇게 반성하고, 목소리를 낼줄 아는 우파는
    없더라...

    글곰님 / 그동안 맘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리라 봅니다. 그의 밑에서
    수학한 학생들이 다른 열매를 또 한번 맺을지...섣부른 기대일까요.
  • kritiker 2005/01/25 23:14 #

    강준만씨의 시도를 존경합니다. 그가 주장한 것들의 시비 여부는, 앞으로 강준만씨처럼 자기 이름을 걸고 논박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와서 벌일 일이지요. 장막에 숨어서 꿍시렁대는 인간이 어쩌고저쩌고 할 게 아니라...-_-;

    ...아웃사이더도 타의 반으로 행보가 마무리되는 것 같아서 슬퍼요-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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